젊음 속의 배움

by 최용주


“아빠, 영어 공부 좀 하세용.”

퇴직 후 2년쯤 지난 6년 전, 거실에서 TV를 통하여 해외 뉴스를 보고 있는데 작은딸이 자기 공부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아니 왜? 갑자기 뜬금없이 아빠가 영어 공부야? 공부는 네가 해야지.”

어이없어 꾸중하듯 말했다.

“학원 애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그래. 아니 6개월 학원비를 환불해 달라니까 다 못 해주고 그중 아주 일부만 환불해 준대. 내가 막 따지니까, 직계 가족에는 공부할 수 있도록 승계는 된대. 그런데 우리 집에는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잖아.”

고시 공부 기간 중 영어 공부를 많이 못 하다가 갑자기 회사 취업으로 방향을 바꾼 작은딸이 영어 학원을 1년 치 등록하여 공부하는 중이었다. 얼마 전 취직이 되어 회사에 입사하면 학원 다닐 시간이 없어 나머지 기간 6개월분 학원비를 환불받으려 학원 직원과 전화로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야, 이 나이에 어떻게 학원에서 애들과 공부하니? 쪽팔리게.”

정년퇴직이라는 사회가 규정한 나이에 대한 한계를 절감한 나로서는 갑자기 젊은이들과 공부하라는 작은딸의 요구에 대한 거절의 핑계로 나이를 내세웠다.

“아니 아빠 나이가 어때서. 내 친구들 아빠는 아빠보다 더 나이 드셨는데 대학교수 하면서 공부하시고, 논문도 발표하시고 그래. 아빠의 그 고리타분한 생각이 아빠를 더욱 old 하게 하는 거야!”

다음날 야무진 작은딸을 따라가 강남에 있는 ‘W*** S***** English’라는 다국적 영어 학원을 가서 level test를 보니 딸이 처음 시작한 단계인 중급 단계이다. 딸과 같은 중급 단계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딸보다 어린 학생들과 자식 같은 원어민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따라 즐겁게 공부를 하였다. 한 번은 지도 선생님에게 나이 들어서 젊은이들과 같이 공부하기가 부끄럽다고 이야기하니, 선생님은, “이 학원에 현재 92세 되신 분이 다니고 계셔요. 영어 선생을 하시다 정년퇴임 후 치매 방지를 위하여 10여 년 전부터 학원에서 공부하시는데, 최종 과정을 마치시면 며느리가 재수강 신청을 하여주고, 할아버지는 계속 공부를 즐겁게 하셔요.”라 이야기한다.

이 할아버지께서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학원의 학습실에서 중절모를 쓰고 의자 밑에 신문지를 놓고서 그 위에 신발 벗은 발을 놓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이어폰을 끼고서 공부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이 모습을 본 후 나이 들어 젊은이들과 공부하기 부끄럽다고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예전에 하던 공부의 감이 살아났다. 다시 시작한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딸이 남겨놓은 6개월 기간의 공부가 너무 부족했다. 아내 몰래 비축한 비상금에서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수강료를 지불하고서 최종 과정까지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공부를 계속했다.

영어 학습의 방법은 2~3주 동안 집이나 학원의 학습실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정해진 분량의 과제를 혼자서 공부한다. 정해진 공부를 마친 후, 학원에 가서 수시로 바뀌는 원어민 선생님들과 직접 면담하여 그 과정을 잘 소화하였는지 test를 받은 후 합격해야 한다. 다음은 학생들 여럿이 모여 group study를 마친 후 그 과정을 통과하면 상급 과정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꾸준하게 공부하지 않고 잠시의 게으름을 피우면 자식 같은 선생님에게 혼나고, 딸보다 어린 동료 학생들에게 망신을 당할 수 있으며, 낙제를 하면 그 과정을 다시 공부해서 재 test를 받아야 하는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했다.

공부하는 동안 친구들의 만남 요구에 자주 응하지 못하자, “야 우리 나이에 남은 인생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데 청승맞게 무슨 공부야!” 하는 친구가 있었으며, 한 친구는 “외국어 번역기가 나오는데 늙어서 무슨 영어 공부냐. 시대에 걸맞게 살아, 이 친구야!”라는 질책을 하였다.

하지만 난 송도와 강남을 오가면서 열심히 꾸준하게 공부하였다.

한 학생이 자유토론 시간에서, “Sir, I have been being greatly motivated by your passion. (어르신의 열정에 저는 많은 동기부여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젊은이에게 귀감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사회생활에 호기심이나 두려움을 나타내는 젊은이들에게 나의 경험 및 조언을 들려주었다.

“영어는 외국어가 아니고 세계인이 사용하는 세계어이므로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려는 여러분들이 꼭 익혀야 하는 무기예요. 평생 공부라 생각하세요. 나는 포기하였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해서 아쉬운 점이 많은데, 중도에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영어권 대학 1년생만큼 영어를 접하려면 비영어권 사람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3~4시간을 120년 정도를 공부해야 한대요. 본토 사람처럼 될 것을 목표로 공부하되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국제무대에서 대접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니까요.”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경청하는 젊은이들이 무척 고맙고 사랑스럽다.

James라는 키 크고 잘생긴 30대 중반의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이 있었다. James는 나의 작문 숙제를 검토 후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Sir, how old are you? (어르신 몇 살입니까?)”라 묻는다.

“I’m sixty two. (62살이에요)”라 대답하였다.

“You are the same age as my father-in-law. (저의 장인과 동갑이시네요)”라 말을 하면서, “I envy you who are living much younger life than he. (저의 장인보다 훨씬 젊게 사시는 어르신이 부럽습니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여 아기들을 낳고서 사는 James는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old man에게 자기의 장인과 비교하면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2019년 4월, 최종 과정을 마친 나는 졸업장을 받은 즉시 이를 찍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보낼 때 마음속으로, “여보, 딸들아, 친구들아 나 해냈다!”하고 속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카톡을 받은 아내와 딸들에게서 ‘하트, 엄지 척’ 등의 이모티콘과 함께 “자랑스러워요!” “수고하셨어요!” “사랑해요!” 하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용주, 수고했다. 역시 대단해!” 하는 친구의 진정 어린 축하 메시지가 나를 흐뭇하게 하였으며, 전에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았던 친구의 “허허 대단한데. 역시 용주는 한다면 하는구먼.” 하는 떨떠름한 축하에는 마음으로 쾌소를 보냈다.

아내는 일찍 퇴근하여 식탁에 뽀글뽀글 끓는 김치찌개와 그 옆에 막걸리 한 병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상금에 대하여 다시는 시비를 걸지 않는 아내의 하해(河海)와 같은 이해심에 안도의 숨을 쉬면서 막걸리를 마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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