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서른

by 최용주


2019년 8월 중순이다. 엄청 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는 날이다.

“나, 갔다 올게요.” 출근하면서 아내가 말하자, 나는, “잘 갔다 오셈.” 하고 응답한다.

딸들이 어릴 때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내와 딸들이 “아빠 잘 다녀오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흔들어 줄 때 전쟁터로 향하는 장군과 같은 의기양양함을 느끼며 출근하던 추억이 마음 한쪽에 아련히 남아있다(퇴직 후, 아~사회에서 따돌림당한 것 같은 이 기분! 이 사회가 참 야속하다).

구매부서 팀장으로 재직 시, 담당 임원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아 당한 보복인사로 괴로움에 빠져 있을 때, 아내는 불안하여 자기의 전공을 살려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내가 정년퇴직한 후에는 가장 역할을 하며 집안을 이끌어 오고 있으며 두 딸을 결혼시킬 때에는 아내가 모은 돈으로 결혼을 시켰다. 아내와 두 딸의 빠꿈이 정신으로 허례허식하지 않고 최소의 비용으로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두 딸 부부가 고맙다.


아내가 출근한 후 넓은 집안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있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묵주를 집어 들고서 집안의 방들과 주방, 거실을 돌면서 묵주기도를 10단 바치니 40분 걸린다. 청소기로 발길이 많이 닫는 곳을 위주로 한 10분 정도 청소한다.

오늘은 한 달 후 참가할 10km 달리기 대회를 위하여 단지 내 운동실(gym)에 가서 연습하여야겠다. 운동실에서 스트레칭하고 있을 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와 있어 확인해 본다.

[Web 발신]

연수청학도서관 시니어 프로그램 <두 번째 서른> 수강자 모집 안내

안녕하세요! 재미있는 글쓰기 프로그램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내 인생을 사전으로 만들어본다면 어떨까요?

살아오면서 느꼈던 일상의 모습을 기억해보고 에피소드,

추억 이야기를 사전의 ㄱㄴㄷ... 순서의 색인표에 맞춰 인생 사전 작성하여 보세요.

《이하 생략》


‘두 번째 서른’이 뭐지?

얼마 전에 아내 혼자서 영화 ‘두 번째 스물(Twenty Again)’을 보면서 나에게 같이 볼 것을 요청하는 것을 ‘애들 장난하는 유치한 영화를 왜 봐!’ 하면서 안 봤던 기억이 있다.

‘이것도 노인들 장난치는 영화 홍보 문자 아냐?’라 생각하고 휴대폰을 접었다. 러닝머신(treadmill)에서 달리기 운동을 하다가 조금 전에 본 메시지가 생각이 난다.

‘어, 수강생 모집이라면 영화가 아니잖아.’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다시 그 메시지를 다시 열었다.

‘재미있는 글쓰기 프로그램’이란다. ‘살아오면서 추억의 이야기를 사전식으로 자신만의 글쓰기를 체험한다.’는 말이 나의 흥미를 일으켰다. 나는 ‘인원수가 다 찼으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맘으로 전화를 했다. 앗, 다행스럽게도 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등록 후 나는 아내에게 자랑스레 글쓰기 공부를 등록하여 9월부터 글쓰기를 배우러 청학도서관에 간다고 하니 아내도 매우 기뻐한다.

“내가 이번에 글쓰기를 배워서 좋은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거야.”

큰소리를 친다.

“당신은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아내가 맞장구를 쳐주니, ‘앗, 이거 괜히 큰소리치고 나중에 망신당하는 거 아냐?’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드디어 9월 4일 개강일!

몇 명이나 올까? 수강생이 나 혼자 아닐까? 남자 수강생은 몇 명이나 될까? 나 말고 1~2명 더 있어야 할 텐데… 여러 가지 걱정을 하면서 강의실인 도서관 세미나실에 갔다.

수강 시작 30분 전에 제일 먼저 도착하여 앞에서 두 번째 줄 왼쪽에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잠시 후 여성분들이 들어온다.

‘아이고 남자 수강생은 없네. 죽어지내야겠네.’ 선생님께서 남자 수강생 한 분 더 계시는데 오늘 안 나오셨단다. 이 사람 나오면 통성명하고 같이 막걸리 마시면서 잘 지내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주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오기로 하셨던 남자 수강생께서 못 나오신다고 합니다.” 한다. 청일점이 되었다. 야속한 사람…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숙제도 내주신다. 다시 수업을 받는 학생이 되니 기분이 새롭다. 학교 다닐 때는 비싼 수업료 내가면서 땡땡이치는 재미가 솔솔 하였는데 여기는 출석과 숙제를 대신해 줄 고마운 친구도 없으니 혼자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ㅎㅎㅎ


아래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내용 중 일부이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 훈련 10가지 method(강원국 글쓰기) 중

- 흉내 내기를 하여라.

- 좋아하는 작가나 칼럼니스트를 정하라.

- 반복적으로 읽어라.

- 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 소설이라면 다섯 번 이상,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글은 열 번 이상 읽어야 한다.

- ‘왜 이런 내용을 썼을까?’, ‘왜 이렇게 썼을까?”를 생각하면서 읽어라.

- ‘시 쓰기를 해라.’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산문을 쓰고, 산문을 못 쓰는 사람이 비평한다.

- 비유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지성

- 쓸 수만 있다면 시를 쓰는 것이 글쓰기 연습의 정수


“당신 옛날에 읽던 시집은 어디 있어? 나 공부하게 좀 찾아줘.”

일단은 시를 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서 시집을 찾다가 못 찾아서, 소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부탁하였다.

“어디 책꽂이에 있을 거야. 난 지금 피곤하니까 당신이 좀 찾아봐요.”

‘어휴, 하늘 같은 서방님의 말씀을 아주 우습게 아네. 당장 일어나서 찾아와!’ 하고 소리를 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참아야 한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치사하다는 생각을 품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석하였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미사 중에 부르는 찬송가들은 훌륭한 시였으며, 미사 중에 하는 신부님의 강론이나 성경 말씀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칼럼이자 소설이었음을 깨달았다. 평상시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던 모든 일이 나에게 배움을 주는 훌륭한 스승이란 것을…

더 나아가 배우고자 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졌을 때 모든 환경이 배움의 소재가 된다는 것을 미사 중에 깨우친 것이다.

이것을 깨우친 후 나는 신문을 읽을 때나, TV에서의 뉴스와 드라마를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에도 글쓰기의 관점에서 읽고 시청하는 습관을 지니려고 노력한다.

버스 안에서 예전에는 그저 무심코 지나쳤던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할까?’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을 모습과 행동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하여 ‘생활하면서 내가 하는 일들 및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글쓰기와 연계하여 내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원효대사의 해골 물’처럼 매우 큰 깨달음이었다.


3개월 후 수강생 중 8명이 공동으로 “인생 사전 ㄱㄴㄷ”이란 제목의 330쪽 분량 책을 발간하였다. 그중 많은 부분(1/3 이상)을 나의 글로 채웠음을 아내, 딸과 사위들에게 자랑하는 내가 무척 대견스럽게 생각되었다.

책 발간을 자축하기 위하여, 아내와 나는 연수성당 뒤에 있는 ‘**산 주꾸미’에서 맛있는 주꾸미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강의 바로 전에는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강의를 했던 것 같던데.”

“어머, 그럼 은퇴 후에 내가 그 강의받아야겠다.”

아내는 여중․고 시절 미술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미술학도였으나 평생을 성실하고 우직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6남매의 자식들을 양육하셔야 했던 부모님의 경제 사정 때문에 그림 그리기를 중도에서 포기하였기에 그림 그리기 배움에 대한 갈망이 크다.

“이번 강의에 그림 그리는 것이 포함되었으면 나는 자퇴했지.”

나는 나의 손 솜씨를 탓하였다.

“그럼 당신은 글을 쓰고, 나는 삽화를 넣어주면 되겠다.”

아내는 눈을 반짝이며 배움의 의지를 불태운다.

“나는 정말 글을 잘 써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서 될 수 있을까?”

막걸리 한 병을 마시니 용기가 생겨 나의 속내를 아내에게 비친다.

아내는 대학 시절에는 문학반에서 즐겁게 활동을 하였던 문학소녀 시절을 간직한 글쓰기를 사랑하는 여인이다.

“당신은 그동안 학생 시절, 군대 시절, 직장생활 등에서 많은 경험을 하였고 그 와중에 많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었으니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유리하지. 젊은이들이 오랜 기간 배워야 하는 글쓰기 공부도 당신 같은 연륜이 있는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하면 짧은 기간에 배울 수 있어요. 작가 중에서 당신보다 늦은 나이에 등단 한 사람들도 있으니 자신을 가지세요.”

아~ 나이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작가가 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되지만 너무 황홀하다.

나의 가슴에는 이 황홀함이 현실이 될 날이 오도록 노력을 해야겠다는 투지가 활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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