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딸이 아빠

사랑스러운 두 딸

by 최용주


“내 딸들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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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8일이었다.

아내의 양수가 터져서 산후 준비물을 들고서 아내가 근무하던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 입원하였다.

2인실 병실에 아내 혼자 입실하였기에 나는 옆 침대에서 쉴 수 있는 호강을 누렸다.

오후 10시경에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 후, 나는 분만실 앞 복도에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자정을 30분 정도 지난 후 분만실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고, 한 간호사가 조그만 포대기를 안고 나오면서 소리친다.

“정** 님 보호자님!”

나는 용수철처럼 뛰어나가 간호사에게 다가간다.

“네, 접니다.”

“예, 순산하셨습니다. 예쁜 딸입니다. 엄마께서 그러시는데 아빠는 딸을 원하셨다면서요.”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보여준다.

“와 내 새끼구나! 콧등이 무척 예쁘네.”라 생각하면서 기분이 이상야릇하였다.

아내가 진한 곰탕을 먹고 싶다고 하여, 마침 서울대 병원 기계실에서 근무하던 바로 윗 형이 야근이었기에 형이랑 근처에서 자정 넘어 장사하는 곰탕집을 어렵게 찾아 그릇 값까지 지불하면서 곰탕 한 그릇을 사다가 주니 맛있게 먹지만 다 먹지는 못하니 아쉬웠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도 식사가 안 나온다.

나는 간호사에게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 식사가 안 나온다고 항의하니 간호사가 말하기를 아직 아침 식사 시간이 안 되었다고 한다.

나는 시계를 가리키면서 식사 시간이 40분이나 지났다 하니 간호사는 20분 후부터 식사 시간이라 한다.

나는 식사 시간이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 시간이 바뀌었단다.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간호사는 서머타임이 해제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해 열릴 예정인 1988 올림픽에 미국․유럽 국민들이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기 수월하도록 시험적으로 시행하였던 서머타임이 오늘 아침 부로 해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내 딸의 생일은 서머타임의 덕으로 10월 9일 즉 한글날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10월 8일 11시 30분으로 30분 차이로 한글날에 생일이 되는 행운을 놓칠 뻔했다.)


그로부터 2년 7개월 후인 1990년 5월! 상계동 백병원이다.

아내는 예정보다 1주일가량 늦게 시작한 진통을 느끼고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번에도 2인실 병실에 아내 혼자 입실하여 옆 침대는 내 차지였다.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제법 커서 통통 뛰어다닐 정도로 커진 딸·미나의 손을 잡고서 병원 수속을 위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서류접수를 위하여 자리에 앉아있었고 미나는 내 옆에서 캔 음료를 들고 서 있다.

미나보다 1살 정도 어려 보이는 남자 아기가 맞은편에서 미나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들고 있는 캔을 뺏으려 덤벼드는 것이다.

‘캔을 그대로 뺏길 미나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딸은 빈 왼손으로 달려오는 아기의 귀싸대기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제법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아기에게 미나의 힘찬 손의 휘둘림이 정확히 전달되어 아기는 뒤로 훌렁 넘어진다.

울고 있는 아기에게 맞은편에서 앉아있던 아기의 할머니가 달려온다.

“아이고 네가 얻어맞을 짓을 했다. 이놈아!”

자기 손자를 일으켜 안는다.

“아니, 왜 그랬어! 아기에게 그러면 안 되지.”

나는 황급히 일어나 씩씩거리고 있는 미나를 안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이고 깨소금이다. 우리 미나를 건들면 혼난단다.’하였다.

분만실 앞으로 오니 어머니가 계셨다.

“아야, 아기 났다. 미나와 같은 애다.”

약간은 실망스러운 표정이시다.

“그래요, 둘 다 건강하죠?”

“응, 둘 다 건강하고 아기는 아기실로 들어갔다. 이따 점심시간 지나고 그쪽으로 가면 아기 보여준단다.”

신생아실 앞, 창문을 통해서 간호사가 안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2년 반 전에 서울대병원 분만실 앞 복도에서 보았던 내 옆에 있는 미나가 다시 신생아실에 들어가서 나에게 보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같았다.

그래서 나는 확신하였다.

“우리 딸들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흔한 이야기처럼 신생아실에서 다른 아기들하고는 절대 바뀌지 않았다!”


1994년 여름이다.

수리산의 어귀에 조성된 산본신도시이다.

숲이 우거진 산이 병풍처럼 신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뒤에는 울창한 숲을 가진 수리산이 버티고 있으며, 앞에는 쭉쭉 뻗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여름에 양쪽 창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수리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에 에어컨 없이 지낼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모처럼 아내와 한가하게 거실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시원한 참외를 먹으면서 TV를 보고 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아내가 현관문을 여니 침울한 표정으로 작은딸·예나가 들어온다.

“아빠 어딨어?”

예나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찾는다.

“아빠, 아빤 나 낳고서 실망했어?”

아기로서는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예나는 울먹인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아니, 왜 그런 말 하는 거야? 밖에서 누가 뭐라 했어?”

“엉,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나를 보면서 예쁘게 생겼다.”라고 하면서 “너 오빠 있니?”하고 묻길래, “아니요, 언니 있어요.” 하니까 그 아줌마가 “어머 너 낳고 나서 네 아빠 되게 실망했겠다." 했어. 아빤 진짜 나 낳고서 실망했어?”

눈물 어린 커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속으로 ‘이런 염병할 여편네, 어디서 그따위 말을 아기한테 하고 있어, 달려가서 혼쭐을 내버릴까 보다.’

하지만 나의 답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예나에게 대답해주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밀려왔다.

“어~, 솔직히 말해서, 아빠는 처음에는 실망했어.”

예나의 표정은 더욱 울상이 되어간다.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어~,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예쁘게 자라는 우리 예나를 보고서 아빠는 우리 예나를 이 세상의 누구 하고도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이렇게 똑똑하고 야무지고, 사랑스러운 예나하고 아무리 잘난 아들 열 트럭 백 트럭 천 트럭 가져와도 절대 바꿀 수는 없지. 절대 안 돼.” 하면서 예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내 말을 들은 예나는 환해진 표정으로 친구들과 놀러 밖으로 나간다.

그 후로 예나는 그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아들을 꼭 낳으라는 장인어른의 말씀과 주변의 아들을 가진 친구들과 친척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40대 초반에 아내는 나에게 제안하였다.

“여보 우리도 늦둥이 하나 가질래요?”

“늦둥이 좋지 한 번 시도해 볼까?”

나는 흔쾌히 응했다.

“응 그럼 우리들 몸 관리 잘해서 아들 한번 가질까요?”

아내는 진지한 태도로 말한다.

딸 셋을 낳은 후 늦둥이로 아들 쌍둥이를 낳은 자기의 큰 언니에게서 자극을 받은 것인지 사뭇 비장한 표정이다.

“나는 또 딸 낳아도 괜찮아.”

내 말을 들은 후 아내는 두 번 다시 늦둥이를 갖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영원한 ‘딸딸이 아빠’가 되었다.


두 딸이 결혼한 후로, 우리 부부, 두 딸 부부는 일 년에 다 같이 다섯 차례 이상은 만나며, 나는 가까이 사는 큰딸 부부하고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서 막걸리를 즐긴다.

내가 막걸리를 좋아하니 평상시 소주를 마시는 두 사위도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 막걸리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나와 같이 막걸리를 즐긴다.

다 같이 모이면, 두 사위는 서로 잘 보이기 경쟁하듯이 나와 아내에게 잘하려 노력하는 것을 보니 참 귀엽고 예쁜 감정이 샘솟는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어느 잘난 사위들보다도 외적이나 심적으로 훨씬 멋진 사위들이다.

얼마 전에 다 같이 오이도의 조개구이집에 갔다.

조개구이는 번개탄 위에 올려놓은 철망에 각종 조개를 올려놓고 구워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주도적으로 조개를 구워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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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미나 부부, 아내와 예나 부부 셋씩 마주 붙은 두 테이블에서 조개를 구워 먹으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두 사위는 왼손에 목장갑을 끼고 오른손엔 집게를 들고서 자기들의 테이블에 있는 조개들을 철망에 올리면서 열심히 굽는다.

나와 아내는 미안해서 서로 돌아가면서 굽자고 해도 사위들은 “저희의 즐거움을 빼앗지 말아 주옵소서.” 하며 열심히 구워, 나와 아내와 자기 부인들을 위하여 즐겁게 봉사한다.

나는 사위들의 모습을 보면서 옛날 속담이 생각난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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