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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Dec 06. 2021

까탈 부리는 자식

지지난 토요일이었다.

아내와 함께 다음 달 10일에 돌을 맞이하는 손자의 돌 반지를 집 근처의 보석상에서 찾은 후  저녁을 먹으러 궁중삼계탕 집에 들어갔다.

맨 안쪽의 자리가 벽에 편히 기댈 수 있어 그쪽으로 아내를 앉게 하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종업원에게 삼계탕 2개를 주문했다.

잠시 후, 왼편 바로 옆자리에 남녀가 앉는다.

거리두기를 하면 좋겠는데 지척에 앉는 것이 약간은 거슬려 조심스레 쳐다보니 마스크 쓴 모습으로 헤아리기 쉽지는 않으나 남자는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이며, 여자는 50대 초반으로 보인다.

여성을 안쪽 좌석으로 앉게 하고 남자가 맞은편에 앉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그들은 반대로 앉는다.

그들의 방식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둘은 어떤 관계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자’는 나의 지론에 아내와의 대화에만 집중하기로 하지만 들오는 소리는 별 수 없이 들어야 한다.  

“전복 삼계탕 먹을 거야?” 여자가 제안하니,  남자는, “아니, 싫어.”한다.

“그럼 옺전복삼계탕은 어때?”하니, 남자는, “아니, 싫어. 나 간단히 먹고 싶어.”한다.

여자는, “그럼 옺삼계탕은?” 아주 상냥하게 다시 물으니. 남자는, “엉 그러지 뭐.”아주 큰 인심 쓰듯이 말한다.

그들의 음식이 나왔다.

남자는 음식을 뜨려다 말고 음식 전달한 아주머니를 불러, “저 이것 못 먹어요. 이 것 보세요. 빨간 피가 보이잖아요.”하니, 아주머니는, “그것 피가 아닌 것 같은데요.”한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손님 아주머니가 급하게 카운터에 가서 여사장을 데려온다.

“이것 보세요. 음식이 다 조리되지 않아 피가 있는 닭을 가져왔으니 이것을 어떻게 먹겠어요.” 손님 아주머니가 여사장에게 따진다.

“여러 번 왔지만 이런 일은 없었는데 이 것을 제가 어떻게 먹겠어요.” 남자가 말한다.

나는 이제야 마스크를 벗은 두 남녀를 자세히 쳐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남자는 약간의 눈만 들어도 보이니 보기가 쉬웠지만 여자는 약간 머리를 옆 뒤로 돌려야 했기에 눈치가 보였지만 둘 다 보았다.

남자는 처음 예상한 대로 20대 후반이며 코가 날렵하고 피부는 희지만 살결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아 건강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못생기지도 않았으며 머리숱은 아주 많고, 목소리는 저음으로 울리면서 듣기가 좋다.

앞의 여자는 50대 초중반의 여자로서 뿔테 안경을 쓰고 머리에 검은 밴드를 두르는 등 제법 멋을 내려고 하였지만 나이와 몸집이 있어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 둘의 관계는 약간은 모호하지만 신경 쓰지 말고 먹는 것과 아내와의 대화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여사장은 직접 남자의 삼계탕을 들고 가면서, “죄송합니다. 다시 가져오겠습니다.”한다.

잠시 후 새로운 삼계탕을 가져왔다.  

남자는 잠시 먹다가 하는 소리, “이거 전에 내가 먹던 맛이 아닌데 이건 너무 진한데.”하니 앞의 여자는 다시 카운터에 가서 여사장을 데려오니, “맛이 이상해요?”하고 여사장이 물으니 이 남자 하는 소리, “전에 내가 먹던 맛이 아니네요. 너무 맛이 진해요.”하니. 여사장은, “그래요? 아마 잘해 드리려고 재료를 많이 넣었나 보네요.”하니, “저는 전에 먹던 것으로 먹고 싶어요." 여사장은 다시 "평범한 것으로 가져올게요."하면서 삼계탕을 가져가고 한참 후 새로운 삼계탕을 가져다준다.

잠시 먹다 남가, “이것 국물이 없네. 삼계탕은 국물 맛으로 먹는 건데.”하니 앞의 여자는 다시 카운터의 여사장에게 가서, 뭐라 하니 다시 여사장이 와서, “국물을 여유 있게 다시 가져다 드릴까요?”한다.

남자는 “예 국물 좀 여유 있게 주세요.” 하니 여사장은 다시 삼계탕을 가지고 가서 잠시 후 국물을 가득 담아온다.

남자는 다시 삼계탕을 깨작깨작 먹는다.

나는 이 둘의 행동을 보고서 둘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이들의 대화에 신경이 쓰인다. 남자가 여자에게 이야기하는 도중에 부르는 호칭이 엄마라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린다.

그래서 나는 이 남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까탈 부리는 자식과 이를 받아주는 엄마.’

음식을 먹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남자는 레깅스 위에 운동 반바지를 입었는데 하체는 빈약하고 키도 그다지 크지 않고 왜소하였다.

까탈남이 남겨 논 그릇을 보니 반쯤의 음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형제 중에도 음식에 ‘까탈 부리는 자식’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8남매와 부모님, 할머니로 이루어진 대가족이었다.

먹거리가 귀한 시절에 우리 8남매에게 배 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시의 할머니와 부모님의 가장 큰 책임이자 기쁨이었다.

고구마를 한 바구니 삶아 형제들 가운데 놓으면 손이 빠른 사람이 하나라도 더 먹을 수 있는 생존경쟁이 심하던 환경에서도 까탈을 부리는 형이 있었으니 누구라 말은 하지 못하겠다.

이 글을 읽고 나에게 공격을 할까 봐 …

이 형은 신 김치를 못 먹고, 비린 내 나는 것이 밥상에 나오면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고, 약간 설익었거나 질게 된 밥은 쳐다보지도 않는 등, 하여간 엄청나게 음식 까탈을 부렸다.

따라서 몸의 건강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고 항상 말라 있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러한 까탈스러운 형을 위하여 다른 형제보다 특별 관심을 쏟아주셨다.

참으로 부모의 사랑은 위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사랑이 형을 까탈장이로 만들어 준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신병 훈련소에서의 일이다.

식당의 음식은 일반인에게는 많은 양이지만 운동량이 많은 젊은 훈련병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훈련 초기에 옆에서 식사를 하던 한 훈병이 말하기를, “어휴 고등어로 국을 만들어 주네. 이따위 것을 어떻게 먹어.” 하면서 식사 후 고등어 국을 받은 그대로 퇴식 통에 버린다.

열흘 후, 그 친구가 내 앞에서 배식을 받는데, 오늘도 고등어 국이 나왔다.

배식 전에 나는 그 친구에게, “너 고등어 국 안 먹으면 나 줘.”하니, 이 친구는 인상을 쓰면서, “야 이 친구야, 시방 배고파 죽겠는데 이 만난 것을 왜 줘.”한다.

어색한 미소를 띠우면서 배식하는 사병에게 고등어 국을 조금 더 줄 것을 부탁하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음식 까탈에는 배고픔이 약이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직장에서도 한 까탈남이 있었다.

나보다 1~2년 늦게 입사하였으나 나이는 나보다 1살 위였다. 이 친구는 시골 출신으로 아버지가 고향에서 학교장으로 근무하는 등 나름 그 고장에서는 명망가였다.

이 친구는 잘 생긴 것과는 거리가 있는 친구였지만 집안의 영향으로 고향에서 제일 예쁘고 참한 처녀와 결혼을 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받았다.

무슨 식품 파동인가 아니면 무슨 사정으로 인하여 사무실 직원들이 외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때가 잠시 있었다.

이때 간부의 자리에 사원들이 자기들이 싸온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먹었다.

그런데 이 친구의 도시락 반찬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자기 고향에서 온 토종의 재료로 반찬을 만들어 오는데, 밥통보다 1.5배 큰 반찬통에 각종의 반찬이 있다.

이 친구의 반찬을 먹으면서, “야 박 계장,  장가 잘 보내서 이러한 진미를 다 맛보네.”라는 농담을 하면서 우리는 감탄을 하는데, 정작 이 친구는, “도미찜에 고추가 많이 들어갔네. 이 떡갈비는 너무 싱거워. 이 나물은 너무 데쳤네. 정말 이 여자가 시집오기 전에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하면서 투정을 부리며 깨작깨작 음식을 먹는다.

‘이 친구 복에 겨워도 한참 겨웠군. 며칠 굶기면 까탈스럼이 사라질 텐데.’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까탈을 부리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이러한 까탈을 받아주는 것도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작은 딸 유나는 매일 카톡의 가족 단톡방에 손자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준다.

손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함박웃음 꽃이 핀다.

돌이 5일 남아있는 손자는 모든 행동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다.

현재까지  성장 상태가  또래 중 99%의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으니 또래의 애들보다 체격크다.

손자의 모든 면이 다 예쁘고 사랑스럽다.

손자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주고 싶다.

특히 자기 엄마가 해주는 이유식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들을 다 사다 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전에 할 일이 있다.

손자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인격체로 자라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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