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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Dec 19. 2021

때리지 말아요!

폭력 근절 방안

어렸을 때 우리 집과 동네에서 벌어졌던 일상의 단면이다.


“엉엉, 할무니 할무니 어디써?” 울고 집으로 들어오는 용호의 소리에 할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신다.

“우짠 일이다냐? 베드로야! 누가 때렸냐?”

“이발소 넷째 새끼가 때렸어. 동수 이 새끼가 까불어서 패 버렸는디 이 새끼가 지네 형 덕수 델꼬와서 나를 때렸어.”

“아고야, 이런 육시럴 놈이 우리 귀한 손지를 왜 때렸다냐? 용주야, 용철이하구 용운이 어딨냐? 빨리 델꼬와라. 아고 하필 이럴 때 용길이는 먼디로 가버렸다냐.”

나는 할머니의 호출에, “용철 형은 방에서 만화책 보구 있고, 용운이 형은 성당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있어.”라 말하니, 할머니는, “용철아, 퍼득 방에서 나와라. 베드로가 맞고 들어왔다. 용주야 너는 성당에 가서 후딱 용운이 델꼬와라.”

할머니의 일사불란한 전투 지시에 손자들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전주 전동 풍남문 앞,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 낮이다.

허물어진 풍남문의 벽에 지게를 기대어 놓은 지게꾼 5~6명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으며 그중 3명은 담배를 피우고 있다. 풍남문의 앞쪽 상당히 넓은 마당에서 이발소 강 씨 형제들과 연탄공장 최 씨 형제들이 마주 보고 서로에게 삿대질하고 있다.

“오메 또 재미난 귀갱거리 생겼군. 오늘은 숫 적으로 최 씨네가 좀 밀리네.”

러닝셔츠 차림에 목에 수건을 둘러맨 지게꾼 방 씨는 담배연기를 입과 코로 뿜어대면서 말한다.


“야 이 눔아, 나이도 더 묵고 등치도 더 큰 놈이 와 우리 베드로를 때리고 그러냐?”

할머니는 용호를 때린 동수 형 덕수에게 손짓을 하며 소리치신다.

“에이 씨, 용호 저 새끼가 우리 동수 때린게 내가 쥐어 발린 것이요.”

덕수가 씩씩대며 말한다.

“아녀 동수 이 새끼가 먼저 나한테 시비 걸었단 말여.”

“아니, 그런다고 우리 베드로를 때렸어, 이리 나와 이 개새끼.”

덕수와 동년배인 용철 형이 덕수에게 으른다.

“아니 너 용철이 이 새끼 어디에다 니가 을려, 이 시발 새끼.”

이발사 집 첫째인 천수가 용철에게 눈을 부라리면 오른 주먹을 뒤로 젖히면서 칠 기세다. 천수는 우리 집에서 동원된 최고령 형인 용운이보다 2살이 많고 오늘 전투에 참석하지 못한 둘째 용길 형과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이다.

“어이 시발, 오늘 용길이 형이 시골만 안 갔어도 오늘 이 것들 다 때려 죽여버릴텐디 …….”

씩씩거리며 용운 형이 말한다. 같은 동년배끼리는 우리 집이 이기는데 2년씩 터울인 연상에게는 질 수밖에 없으니, 오늘은 용길 형이 안 와서 우리가 밀리는 판세다.

이때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저편 이발소에서 나와 이리로 뛰어온다. 이발소에서 일하는 천 씨다. 몸집이 제법 탄탄하여 힘 좀 쓰게 생겼다.

“야, 독종인 연탄공장 최 씨 집안이 또 떼거리로 나왔네잉. 아고 이번에는 할무이까지 오셨네유.”

느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강 씨 편에 합류한다. 이제는 최 씨 편에는 5명, 강 씨 편에는 7명. 숫적으로 최 씨가 밀리지만, 분기탱천한 할머니와 형제 4명으로 뭉쳐진 최 씨 편은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다.

“야 이눔들아, 다시는 우리 베드로 안 때리겠다고 약조해라. 안 그러면 지금 당장 니네 애비에게 가야겄다.”

“아니, 할무이, 용호 저 새끼가 우리 동수를 먼저 안 때릴 것이라고 말혀야 혀요. 항상 저 새끼가 초장부터 말썽인디…….”

덕수가 용호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야 너희들 전부 다 이럴꺼여. 여그서 젤 위가 누구여? 너여?”

천 씨가 위압적으로 말하면서 중학교 2학년인 용운이에게 눈길을 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이, 당신이 머시라고 우리 귀한 손지에게 큰 소리여, 큰 소리는.”

허리가 굽여 작아 보이는 할머니는 올려다보며 천 씨에게 호통을 친다.

“에이 시, 할무니는 빠지쇼. 얘들 싸움에 무슨 늙은이가 끼여드쇼?”

천 씨가 할머니를 위협하려 험악한 인상을 지어 보인다. 전세는 급격히 이발소 강 씨편으로 기운다.

“이봐, 새파란 친구가 어르신에게 함부로 그따위 식으로 말을 허는 거여. 이런 싹아지 없는 행동을 하구 지랄이여. 당신 이리 와!”

이제까지 건너편에서 구경을 하던 지게꾼들 중 제일 몸집이 크고 성격이 호방한 방 씨가 앞으로 나오면서 천 씨에게 소리를 친다.

“아니, 당신은 머다요? 왜 우리들 싸움에 당신이 끼쇼?”

“야, 이 사람아, 당신은 집에 엄니도 없어? 당신 할무이뻘 되시는 분에게 말을  그따위로 하는 거여. 당신 이름 머여? 글고 나인 몇이나 처 먹었어? 이런 시퍼런 놈이.”

눈을 부아리고 주먹을 쥐고 다가오는 방 씨에게 겁을 먹은 천 씨는 뒤로 슬슬 빠진다.

“어이, 젊은 놈이 노인 분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허면 안되지. 참 싹아지 없는 놈이네.”

“그런게 말이여. 참 얼척없는 놈일세.”

뒤에서 보고 있던 다른 지겟꾼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나가 심하게 말한 것 안 같은디……. 야, 얘들아 우리 이제 가자.”

슬슬 뒤로 빠지는 천 씨 뒤를 따라 강 씨 형제들도 뒤 따르고 있다.

“야 가길 어디가야. 덕수 너 이리 온나.”

할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덕수는 가던 걸음 멈추고 뒤 돌아본다. 할머니는 용호 손을 잡고 덕수에게 다가가신다.

“덕수, 너 담부터 우리 베드로 안 때리겠다고 약조 혀!”

강하게 명령하신다.

“에이, 알아써요. 안 때릴께요. 용호 너두 우리 동수 때리지마.”

덕수는 풀 죽은 소리로 말한다.

“에이, 시비 걸지 않으면 안 때린당게.”

용호는 동수를 쏘아보면서 말한다.

“형, 빨리 가자.”

동수는 용호의 눈초리에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 덕수의 팔을 잡아끈다.

“베드로야, 담부턴 친구덜 때리지 말구 사이좋게 지내라잉”

돌아오면서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용호에게 조용히 말씀하신다.

“에이 씨, 새끼가 내말을 잘 안 들응게, 때리지, 나 그냥은 안 때려.”

다음 날 낮에 풍남문의 지게꾼들에게 서너 되의 막걸리와 푸짐한 안주가 배달되었다.


자라오면서 많은 폭력에 노출되었다.

가정에서 형들에게,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학교에서 친구와 선배에게, 군대에서의 선배에게, 직장에서 동료와 상사의 정신적인 폭력 등, 이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군대에서의 선임에 의한 폭력이었지만, 그보다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학교에서의 폭력이었다.


나의 초·중학교 시절, 반에서 공부의 서열이 정해지듯 싸움의 서열도 정해졌다. 동생 용호는 거의 자기 학년 전체에서 1등을 유지하였으나, 나는 초등 저학년 시절에는 빠른 생일(1월) 덕으로 반에서 3등 내의 싸움 서열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가고 중학생이 되면서 빠른 생일 덕의 체력적인 이점도 희미하여져 반에서 서열이 많이 떨어졌다. 특히 중학교 시절에 어떤 한 친구는 나를 찍어놓고 괴롭혔다. 아무도 없는 학교의 구석에 데려가 주먹과 발로 배와 얼굴 등을 때려가면서 자기에게 맹종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우세한 체력에 밀려 불만의 말도 못 하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말하면 더욱 심한 보복이 올까 봐 아무런 말도 못 하였다. 나의 허약함에 화가 나서 부모님에게 태권도장이나 권투도장에 넣어줄 것을 부탁하려 하였으나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그러한 부탁을 하지 못하였다. 반면, 형들은 용호의 폭력성을 잡기 위하여 용호를 무도정신이 충실한 사범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에 보내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태권도장에 보냈다.  나는 1년 반 동안 그 친구에게 폭력을 당하였는데, 한 때는 학교를 나가기가 싫어 가출할 것을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가족이 전부 서울로 이사 오는 바람에 그 친구로부터 받았던 고통은 끝이 났다.


얼마 전 성당의 모임에서 한 형제님이 자기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을 괴로워하며 모임의 참석자에게 조언을 구하던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시원한 조언을 하여주지 못하고 집에 와서 왕따에 대하여 인터넷을 뒤져보니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자료가 나와 있어 이를 읽어보니, 나의 학창 시절에 나타났던 폭력이 요즈음의 왕따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명시된 왕따의 이유와 방지책, 해결책을 읽으며 나의 경험에 비추어 학부모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봤다.  


왕따의 대상을 찾는 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왕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에도 자주국방이 있듯이 우리의 자녀에게도 자기 방어가 필요하며 이러한 능력을 키워줌에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 대처하여야 한다.  

또한 학부모는 자신의 자식들이 왕따를 시키는 주체가 되지 않도록 선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왕따를 시키는 학생들은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힘을 이용하여 약한 학생을 괴롭힘으로써 만족을 얻는 자기 자존감(自尊感)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학생인 것이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거나 키워주는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무도를 배우기를 원했으나, 부모님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그러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동네나 학교의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용호는 태권도장에서 뛰어난 운동신경을 간파한 사범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하여 축구선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분출되는 에너지를 운동에 쏟게 된 용호는 친구들에게 보였던 폭력성은 사라지고 그들과 진솔한 우정을 나누는 인격체로 성장하였다.  

살아오면서 많은 무도의 고수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자기가 습득한 무도로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행위를 수치로 알았으며, 약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이들을 도와주는 정의파들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왕따를 당하는 자제를 가지고 있는 부모님이나 남을 왕따 시키는 학생들의 부모님은 자기의 자제를 무도인 정신으로 무장한 관장이 있는 무도관에 보내 진정한 무도정신과 자기 방어 기술을 익히도록 도와줄 것을 권유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전체 국민이 유아 시절부터 진정한 무도 정신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을 하면 학교 및 사회에서의 왕따를 포함한 폭력을 100% 근절은 안 되더라도 최소화시킬 것이라 확신한다.

"전 국민의 무도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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