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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Dec 24. 2021

크리스마스이브 공갈 대작전

유치원 시절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요즈음 며칠 동안 나는 무척 착해졌다.

선생님이 착한 행동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조건 하였다. 

집에서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일찍 일어나서 자발적으로 유치원 갈 준비를 하고 음식 투정하지 않고, 동생 용호가 시비를 걸어와도 부처와 같은 마음으로 다 양보하고, 엄마에게서 받은 용돈 중 과감하게 일부를 용호에게 나누어 주는 등,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착하게 하였다. 

유치원에서는 옆에서 시비를 거는 친구들에게도 무척 착하게 대한다. 

놀이시간 중 놀이기구로 시비를 걸어오면 과감하게 양보하고, 간식 시간에 나에게 배당된 사탕 중 일부를 통 크게 옆의 친구에게 주는 등, 나는  며칠 동안 엄청 착해졌다. 

이제는 모든 준비가 되었다. 

산타할아버지를 맞이할 준비가…


드디어 방학 날이다!

아침부터 산타할아버지 오시는 것만을 기다리가 지쳐서 왜 안 오시냐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오시다 길을 잃으신 것 같다고 하신다.

우리 집에 갈 때까지 못 오시면 어떡하지 걱정을 하면서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 한 분이 밖에서 들어오시며 “여러분! 산타할아버지 오셨어요!”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모하는 아이돌을 기다리는 여고생이 공항 출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흥분이 극에 달하여 교실 입구를 온 신경을 집중하여 쳐다보았다. 

몇 년 동안 어머니와 선생님에게서 귀가 닳도록 들어온 나의 우상 ‘빨간 옷과 모자를 쓰고 기다란 수염을 가진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 

뒤에 있던 나는 친구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나의 우상을 가까이 보기 위하여… 

아~. 나의 모든 환상은 일순간에 깨졌다.

산타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나와 형들이 형이라고 부르는 동네의 20대 청년이 얼굴에 솜으로 만든 흰 수염을 달고 코에 빨간 인조 코를 달고서 나타난 것이다. 

한눈에 인호 형이란 것을 알아챈 나는 산타가 타고 다닌다는 루돌프와 썰매를 보기 위하여 밖으로 나갔으나 썰매의 ‘썰’ 자도 보이지 않았다. 

가짜 산타가 나눠준 기다란 빨간 양말 주머니에 담긴 선물은 일률적으로 남자 친구들에게는  사탕·과자와 모형 자동차, 여자 친구들에게는 사탕·과자와 인형이었다. 

가장 큰 불만은 내가 생각하기에 선물을 받지 못할 것 같았던 착하지 못한 친구들, 특히 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친구도 다 선물을 받았던 것이다. 

찜찜한 마음으로 선물을 들고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용주가 유치원에서 선물 받아왔네. 누가 줬어?”하고 묻기에 “공갈 산타가 줬어. 인호 형이 산타로 꾸며서 왔어. 완전 공갈이야.”하고 나는 속았다는 분노를 담아 말을 하였다.

“엄매, 와 어린애를 산타로 세웠다냐? 낫살 좀 진득한 사람으로 허지.”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큰딸 유치원 시절이다.

미나가 유치원에서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아왔다. 

“산타할아버지 어떻게 생겼어?”하고 물어보았다. 

“오늘 산타할아버지 완존 가짜야.”

화가 나듯이 말을 한다. 

“왜, 가짜야?”하고 물었다. 

“선물 주시고 나를 안고서 사진 찍을 때 수염을 살짝 당기니까 그것도 몰라. 그러고 내가 원하던 선물도 아냐.”

“진짜 산타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이브인 내일 미나랑 유나가 잠자고 있을 때 오셔서 너희들이 원한 선물을 가져다주실 거야."

30여 년 전 산타할아버지의 환상이 깨지던 기억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나에게 말하였다. 


다음날 근무시간에 상사의 눈치를 보다가 잠깐 시간을 내어 근처의 백화점에 가서 미나와 유나가 갖고 싶어 하던 것들을 사서 예쁘게 포장하였다. 

미나와 유나가 집에 있다는 것을 간파한 나는 선물을 우리 아파트의 문 옆에 있는 ‘수도계량기함’에 숨겨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두 딸은 산타할아버지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버티고 있다. 

빨리 자야지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고 자라고 해도 산타할아버지를 보고 잘 거라고 자지 않고 버틴다. 

아내와 나는 피곤하여 빨리 자야겠는데 두 딸이 '안 자고 버티기 전술'로 나가니 우리도 '안 자고 버티기' 로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다.

새벽 1시가 훌쩍 지나 딸의 방을 살짝 열어보니 두 딸은 잠에 빠져있다.  

‘수도계량기함’에서 선물을 꺼내와 아내가 미리 두 딸에게 자기의 바람을 써놓았던 카드를 선물의 포장 안에 집어넣고 콜콜 자고 있는 미나와 유나 머리 밭에 놓고 방에서 빠져나왔다.

조금 전에 잠에 빠진 아내에게 미션 수행 완료를 보고하니 아내는, “그래 수고했어요.”한다. 

나는 엄청 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장군과 같은 기분을 안고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와, 엄마 아빠! 산타할아버지 왔다 가셨어. 선물 놓고 가셨어.” 하는 두 딸의 환호성에 잠이 깬 나와 아내는 서로를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각자의 선물을 품에 안고서 안방으로 들어온다.  포장지를 풀어보니 예쁜 카드와 함께 미나가 원하였던 ‘미미인형 소꿉놀이’가 나오고 유나에게는 역시 예쁜 카드와 함께 ‘곰돌이 푸 인형’이 나온다. 

“엇 여기 예쁜 카드도 있네. 카드에 산타할아버지가 미나와 유나에게 뭐라고 쓰셨네. 아빠가 읽어줄까?” 하니. 이제 막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미나는, “아냐, 내가 읽을 거야.”하면서 카드를 읽는데 모르는 글씨가 나오면 엄마의 도움을 받아 또박또박 읽어나간다.  

“사랑하는 미나에게. 올해도 아빠 엄마 말씀 잘 듣고 동생 유나를 잘 돌봐줘서 산타할아버지가 미나가 원하는 미미인형 소꿉놀이를 선물로 가져왔으니 유나와 사이좋게 잘 노세요. 그런데 미나는  요사이 밥을 많이 안 먹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에 투정을 부리는 일들이 자주 있는데 내년에는 밥도 많이 먹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골고루 다 먹으세요. 그러면 산타할아버지가 내년에도 또 올게요. 미나야 많이 많이 사랑해! 산타할아버지가 미나에게”  


돌이 며칠 지난 손자가 '어린이집'에서 산타할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찍은 사진을 작은 딸이 카톡으로 보내왔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선물을 안고서 산타할아버지 무릎에 의젓하게 앉아있는 손자를 보니 사랑의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몇 년 후 손자가 산타할아버지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되면 딸과 사위도 나와 아내가 하였던 즐거웠고 보람찼던 ‘크리스마스이브 공갈 대작전’을 펼치지 않을까? ㅎㅎㅎ 


I wish all of you have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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