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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Feb 26. 2022

대추예요, 대추!

결혼 후 이제껏 나는 산책이나 등산하기 좋았던 동네에서 살았다. 

신혼 초에 살았던 상계동 근처에는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등이 있어 젊고 튼튼한 다리를 가졌던 나는 주말에는 이 산들을 많이 섭렵하였다. 두 딸이 한참 성장하던 시절에는 아파트 바로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수리산이 자리하고 있어 새벽에는 약수통을 들고서 약수터를 찾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혹은 혼자서 수리산의 품에 안겨서 산림욕을 즐겼다. 

태생적으로 건강 체질은 아니었던 내가 아직까지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젊어서부터 많이 움직였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건강을 기반으로 50대 초반까지 마라톤을 즐길 수 있었으며,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까지는, 현재 살고 있는 송도에서 개최되는 국제마라톤대회의 10km 경주에서 젊은이들 못지않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2년 전에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껴 정형외과를 가니,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몸을 살살 달래가면서 살아가란다. 아직 70도 안되었는데…. 이제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만큼 이에 대한 실망감이 많이 컸지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능력에 맞추어 살기로 하였다. 


살고 있는 송도국제도시에 대한 나의 작은 불만은 도시 내에 산이 없다는 것이다. 차로 5~10분쯤 달려가면 산들이 있지만 이제껏 내가 살던 동네에 비교하면 지척에 산이 없다. 반면에 어느 집에서도 도보로 5~10분 이내로 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어 산책을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송도 공원들의 특징은 풍부한 물을 품은 것이다. 수변길, 커낼(canal), 해변, 큰 호수 등을 갖추어 이러한 시설을 즐기며 즐거운 산책을 할 수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 송도에 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건강에 좋은 산책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참으로 아쉽다.

무릎이 아픈 후에는 산보다 근처의 공원을 산책하면서 건강을 챙긴다. 혼자서 산책을 할 때는 묵주를 한 손으로 들고서 기도를 하면서 산책을 하면 운동을 해서 건강에 좋고, 기도를 하니 하느님의 은총이 하늘에서 내 머리로 펑펑 쏟아지는 기분을 느껴 좋고, 몸과 정신의 상태가 좋으니 글쓰기에 좋은 생각이 머리에 솔솔 들어온다. ‘일석 삼조’, 어떨 때는 ‘일석 4~5조’의 효과를 본다. 

명선초등학교와 포스코고등학교 뒤편의 산책길


아내와 산책을 많이 한다. 아내와 산책을 하면 집안에서 서로 티격태격하여 생겼던 감정의 앙금이 시원한 바람에 다 씻겨나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서로의 마음에 상큼한 사랑으로 채어져 온다. 대부분의 경우에…

아내와 산책을 할 때는 아름다운 경치와 상큼한 공기에 취해서 즐거운 대화의 꽃을 피운다. 그러나 어느 때에는 활기친 걸음이 갑자기 조심스러워지면서 즐거웠던 마음이 사라진다. 길 앞에 애완견의 변들이 떨어져 있다. 공원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에 ‘애완견의 변은 스스로 채취하여 가시기 바랍니다.’라 쓰인 권고를 아예 무시하는 후진적 에티켓(etiquette)을 지닌 시민의 의식이 원망스럽다. 어떤 이들은 아예 반려견의 대변을 보게 하려고 산책을 나온다는 말도 있다. 아~, 이 글을  이런 향기롭지 않은 내용으로 이끌어가지 않으려 했는데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더 이야기해야겠다.


지난주 어느 날, 화창한 날씨에  미세먼지 상태도 양호하여 아내와 산책을 나갔다. 해가 지기 시작한 오후였다. 얼마 남지 않은 햇살을 즐기려 달빛공원의 수변 산책로를 향하여 아내와 함께 상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연송고등학교와 명선초등학교 사이에 길게 뻗어있는 공원 입구를 지나 끝에서 오른편으로 돌아서면 명선초등학교와 포스코고등학교의 뒤편으로 길게 이어진 산책길이 나온다. 아내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초등학교의 뒤편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앞쪽에서 체구가 작은 여인이 걸어오고 있다. 추운 날씨 탓에 까만 모자, 두꺼운 까만 오리털 코트와 하얀 마스크를 끼고 있어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알아보지 못하겠다. 그 여인의 앞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머리가 부슬부슬하고 다리가 짧은 조그마한 애완견이 여인이 잡고 있는 줄에 매달린 채로 졸졸 걸어오고 있다. 갑자기 애완견이 방향을 옆으로 돌려 산책로의 왼편에 있는 잔디로 가더니 엉덩이를 뒤로 낮추고서 변을 보기 시작한다. 아내와 나는 이야기를 멈추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지나쳤다. 지나친 후 뒤를 돌아보니 이 여인은 변을 땅에 두고서 개와 함께 자기가 가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목소리에 불쾌한 감정을 제거한 톤으로, “아주머니, 개의 변은 치우고 가셔야죠.”하였지만, 그 여인은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다는 듯이 자기 갈길을 간다. 나는 조금 더 큰 소리로, “아주머니, 개의 변은 치우고 가세요!”하고 소리쳤다. 그래도 모른척하고 간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여인 쪽으로 가면서, “아줌마, 개똥은 치우고 가세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야 여인은 돌아선다. 옆에 있던 아내는 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친 후 여인 쪽으로 다가가 공손히, “저 죄송하지만 개의 변들이 널어져 있으면 산책하시는 분들이 불쾌해하시니 치워 주시는 것이 좋겠네요.”한다. 여인은 아내와 나를 어이없다는 식으로 번갈아 쳐다보면서, “어머 대추예요, 대추.” 하면서 불쾌함이 묻어나는 태도로 자기의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서 땅에 떨어져 있는 자기 개의 변으로 간다. 그 자리를 보니 크기가 대추만 한 변들이 너 댓 개 널브러져 있다. 나는 불쾌한 기분으로  옆에 있는 아내만  들릴만한 소리로,  "그 대추 아줌마가 다 드셔." 라 하면서 뒤로 돌아서 가니 아내는 주먹으로 내 등을 툭 치면서, "쉬~, 조용히 가요." 하면서 따라온다.


여러분, 우리 산책을 열심히 즐겁게 합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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