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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Jun 11. 2022

만학도(晩學徒) 부부의 열정과 즐거움

두 번째 서른

2019년 8월 중순, “나 갔다 올게요.” 출근하면서 아내가 말하면, 나는, “잘 갔다 오세요!” 하고 웃으면서 응답한다.

딸들이 어릴 때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내와 딸들이 “아빠 잘 다녀오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흔들어 줄 때 전쟁에 나가는 장군과 같은 의기양양함을 느끼며 출근하던 추억이 마음 한쪽에 아련히 남아있다. (아~ 나이 들어 퇴직 후, 사회에서 왕따 당한 것 같은 이 기분! 참 씁쓸하다.)

오늘은 한 달 후 참가할 10km 달리기 대회를 위하여 아파트 단지 내 운동실(Gym)에 가서 연습을 한다.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있을 때 휴대폰에서 메시지 음이 들려와 확인해 본다.

“[Web발신] 연수 청학도서관 시니어 프로그램 <두 번째 서른> 수강자 모집 안내

안녕하세요! 60세 이상의 어르신의 재미있는 글쓰기 프로그램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이하 생략〉”

‘두 번째 서른이 뭐야?’

얼마 전에 아내가 혼자서 영화 ‘두 번째 스물(Twenty Again)’을 보면서 나에게 같이 볼 것을 요청하는 것을 “얘들 장난하는 유치한 영화를 왜 봐!” 하면서  거절했던 기억이 있다. ‘이건 노인들 장난치는 영화 홍보 문자 아녀?’라 생각하고 휴대폰을 접고서. 러닝머신(treadmill)에서 달리기 하다가 조금 전에 본 메시지의 내용이 생각난다. ‘어, 수강생 모집이라면 영화가 아니잖아.’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그 메시지를 다시 열어보니 ‘재미있는 글쓰기 프로그램’이란다. ‘살아오면서 추억의 이야기를 사전식으로 자신만의 글쓰기를 체험한다.’는 말이 나의 흥미를 일으켰다. ‘정원이 다 찼으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하였다. 아~, 다행히 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커뮤니티의 운동실(Gym)


등록 후 나는 아내에게 자랑스레 글쓰기 공부를 등록하여 9월부터 글쓰기를 배우러 청학도서관에 간다고 하니 아내도 매우 기뻐한다.

“내가 이번에 글쓰기를 배워서 좋은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거야.” 큰소리를 친다.

“당신은 꼭 그렇게 될 거예요.”아내가 맞장구를 쳐주니, ‘앗, 이거 괜히 큰소리치고 나중에 망신당하는 거 아냐?’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드디어 9월 4일 개강일!

몇 명이나 올까? 수강생이 나 혼자 아닐까? 남자 수강생은 나 말고 1~2명 더 있어야 할 텐데….  수업 시작 30분 전에 교육장인 청학도서관 세미나실에 가니, 아무도 없다.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여성분들만 들어온다. ‘아이고 남자는 없네. 죽어지내야겠네.’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남자 수강생 한 분 더 있는데 다음 주부터 나온다고 하신다. 이 사람 나오면 통성명하고 같이 막걸리 마시면서 잘 지내야지 생각했다. 다음 주 이 사람은 안 나온단다. 아, 야속한 사람…. 청일점이 되었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숙제도 내주신다. 수업을 받는 학생이 되니 기분이 새롭다. 학교 다닐 때는 비싼 수업료 내가면서 땡땡이치는 재미가 솔솔 하였는데 여기는 대리 출석해 줄 친구들도 없고 숙제를 대신해 줄 고마운 친구도 없으니 혼자서 열심히 해야 한다. ㅎㅎㅎ

“당신 옛날에 읽던 시집은 어디 있어? 나 공부하게 좀 찾아줘.”

‘쓸 수만 있다면 시를 쓰는 것이 글쓰기 연습의 정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일단은 시를 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서 시집을 찾다가 못 찾아서, 소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부탁하였다.

“어디 책꽂이에 있을 거야. 난 지금 피곤하니까 당신이 좀 찾아봐요.”

‘어휴, 하늘 같은 서방님의 말씀을 아주 우습게 아네. 당장 일어나서 찾아와!’ 하고 소리를 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참아야 한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치사하다는 생각을 품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성당의 미사에 참석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미사 중에 부르는 찬송가들은 훌륭한 시였으며, 미사 중에 하는 신부님의 강론이나 성경 말씀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칼럼이자 소설이었음을…. 평상시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던 모든 일이 나에게 배움을 주는  훌륭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배우고자 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졌을 때 모든 환경이 배움의 소재가 된다는 것을 미사 중에 깨우친 것이다.

이것을 깨우친 후 나는 신문을 읽을 때나, TV에서의 뉴스와 드라마를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에도 글쓰기의 관점에서 읽고 시청하는 습관을 지니려고 노력한다. 버스 안에서 예전에는 그저 무심코 지나쳤던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할까?’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을 모습과 행동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하여 생활하면서 내가 하는 일들 및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글쓰기와 연계되도록 내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는‘원효대사의 해골 물’처럼 매우 큰 깨우침이었다.

3개월의 수업 후 같이 공부하였던 수강생 중 8명이 공동으로 “인생사전 ㄱㄴㄷ”이란 제목의 330쪽 분량 책을 발간하였다. 그중 많은 부분(1/3 이상)을 나의 글로 채웠음을 아내, 딸들과 사위들에게 자랑하는 내가 무척 대견스럽게 생각된다.

책 발간을 자축하기 위하여, 아내와 나는 연수성당 뒤에 있는 ‘**산 주꾸미’란 식당에서 맛있는 주꾸미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정말 글을 잘 써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서 될 수 있을까?”

막걸리 한 병을 마시니 용기가 생겨 나의 속내를 아내에게 비친다.

“당신은 그동안 유아 및 학생 시절, 군대 시절, 직장생활 등에서 많은 경험을 하였고 그 와중에 많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었으니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유리하지. 젊은이들이 오랜 기간 배워야 하는 글쓰기 공부도 당신 같은 연륜이 있는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하면 짧은 기간에 배울 수 있어요. 작가 중에서 당신보다 늦은 나이에 등단 한 사람들도 있으니 자신을 가지세요.”

아~ 나이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작가가 될 생각을 하니 나의 여생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감을 느낀다.


문예창작학과 여학생과의 동거

“여보, **사이버대학교에서 배움터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데, 당신 글쓰기에 도움 될 겸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해서 공부할까?”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기 2~3개월 전에 서재로 들어오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말을 한다. 나는 “그래 그것 좋은 생각인데.”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는 문예창작학과 여학생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내는 학생 시절에 꿈과 재주가 많았던 모범학생이었다. 그림실력이 뛰어나 여고 시절에는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미술을 전공으로 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평생 농사를 지어 6남매를 성실하게 키우신 장인어른의 형편으로는 미술을 계속하기 여의치 않아 미술 선생님을 피해 가면서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는 나는 마음이 짠하다. 대학시절에는 독서 서클활동을 하였단다. 멋진 사진과 함께 올리는 카스토리와 블로그의 글을 보면 필력이 상당하다.

정년퇴직 6~7년 전, 건설회사 구매부서에서 비리에 휘말리지 않으려다 따돌림당하고 좌천되는 고충을 겪는 내 모습을 보는 아내는 마음이 불안하여 자기의 전공을 살려 초등학교 보건교사를 시작하였다. 생활에 조그마한 보탬을 주고자 시작하였던 직장생활을 15년 동안 계속하면서 나의 퇴직 후 집안을 이끌어주는 가장 역할을 훌륭하게 하여 준 덕분에 두 딸을 결혼시키고 살고 있는 집을 그대로 유지시키며 살 수 있다.


퇴직 후 만학의 열정으로 시작한 공부로 인하여 아내는 즐거움과 열정이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화장실 다녀와 물 마시고, 거실에서 등 구르기 운동을 한 후 전날에 들었던 강의를 휴대폰으로 재생시켜 가지고 다니면서 듣는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식사를 하면서 식탁 한가운데에 휴대폰을 거치시켜 놓고 듣는다. 나는 가끔 신경이 거슬려 잔소리하고 싶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해 참는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고 아내는 밤이 좋은 올빼미 형이다. 안방에 아내의 책상과 컴퓨터가 있다. 나는 일찍 들어가서 자야 하는데 아내는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눈에 수면안대를 하고 잠을 청한다. 소리가 수반되는 강의를 들을 때는 “잠 좀 자자”고 사정하지만 아내의 향학열을  꺾을 수가 없어 베개를 옆구리에 끼고서 다른 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일찍 자야 새벽에 일어나서 영어공부, 수출업무, 글쓰기를 할 수 있는데… 다음 주는 시험기간이라서 노력의 강도가 엄청 세다. 집 앞에 피어있는 매화를 잠깐 보러 나가자고 해도 시간이 없어서 안 되니 나 혼자 갔다 오란다. 다른 방에 자다가 베개를 들고서 안방에 다시 들어가니 시험 볼 강의를 틀어 놓은 휴대폰을 배 위에 올려놓고 콜콜 잠들어 있다.

요즈음 향학열에 불타는 아내의 곁에서 ‘소설의 기본 요소 및 창작 방법’, ‘스토리텔링의 이해’, ‘일인 미디어의 글쓰기’ 등을 들으면서 나의 개인 발에 동반적인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대학시절 술을 마시려 친구의 학교에 찾아가 친구에게 땡땡이 칠 것을 꼬드겼으나, 오히려 친구의 권유로 강의실에서 친구 옆자리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강의를 들었던 추억이 아련하다.


꿈을 키우는 만학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작은딸은 출산 후 1년의 산후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여, 자기의 근무시간에는 손자를 회사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어린이 집에서는 아기들이 열이 나거나 긴급사항이 발생될 때는 바로 부모에게 연락하여 데려가도록 하고 있으며, 어린이집이 휴원할 때는 딸과 사위가 자기 회사의 사정에 맞춰 휴가를 내가면서 손자를 돌봐야 한다. 서로가 여의치 않을 경우는 딸이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출동하는 ‘5분 대기조’가 되어 손주 키우기에 동참하고 있다. 사랑하는 딸과 사위와 손자를 위하여 우리가 즐겁게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고맙게 생각된다.

이에 대비하여 딸 집에 가서 입을 간단한 옷과 읽을 책, 노트북을 넣고 갈 백팩(backpack)을 준비 놓았으며, 차에는 항상 여유 있게 기름을 채워놓고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송도에서 동탄까지의 길(59km)을 달려 손주를 돌본다는 것은 체력이 저하된 우리로서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올해 8월에 태어날 손자를 위하여 현재의 체력을 향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아내와 나는 코로나 19 때문에 중단던 운동을 재개하기로 결정하여 아파트의 커뮤니티  피트니스센터에서 아내는 요가와 다이어트 댄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나는 운동실(gym)에서 근력을 단련하고 있다. 아침에 나의 운동 가방은 어깨에 메고, 아내의 운동 가방은 한 손에 들고서 커뮤니티로 향하면 아내는 가볍게 물병을 한 손에 들고서 뒤따라온다. 각자의 운동 장소로 가기 전 자기의 운동 가방을 건네받고서 “고마워요.”하며 웃으면서 자기의 운동실로 향하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아내가 대견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오늘도 ‘만학도 부부’는 임전무퇴 (臨戰無退)의 정신인 ‘대한 노인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사랑하는 손주의 돌보기 작전’을 차질 없이 수행하고 ‘만학도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보람차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요가와 에어로빅으로 건강관리하는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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