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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Mar 06. 2019

진정한 '을'들의 전쟁

영화, <7호실>


진정한 '을'들의 전쟁
영화, <7호실>


(들어가기 전에, 190302)

후후후. 참 좋아했던 시기에 봤던 참 좋아했던 영화. 브런치에 꼭 기록& 추천하고 싶다!



2018.12.01 기록,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읽기에는 그다지 친절하지도 정보적이지도 않은 단상들입니다




살인, 시체, 조선족, 부동산, 마약, 학자금 대출 그리고 여전히 돈돈돈.


한국 사회의 진정한 타자들의 전쟁. 한국 느와르에 너무도 익숙해진 우리들은 경찰과 검사와 조폭들의 싸움을 즐기지만 현실은 건물주와 그 밑 ‘을’과 그 밑 ‘을’과 그리고 저어어어 밑 ‘을’ 들의 전쟁일 뿐. 하루하루가 전쟁이며, 두식의 말처럼, 매일 타들어 간다. 영화의 어떤 인물도 도덕적인 윤리에 움직이지 않는다. 계약이 ‘빠그라질까 봐’ 시체를 봐도 경찰을 부르지 않고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고 마약을 보관한다. 타자를 지우고 숨기고 그렇게 무참히 뛰어야 고작 한 달이 지나고 고작 하나의 시련이 끝났을 뿐이다. 발버둥 쳐봤자 겨우 디비디 방을 벗어난 우리는 누구를 향해 무엇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살아 버텨내고 말아야 하겠지.



블랙코미디


정말이지 볼수록 재밌는 부분이 많다. 내가 한 영화를 이렇게 많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7호실로서 만나게 된 신하균의 연기는 볼 때마다 박수를. 그리고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의 매력이 돋보이는 여러 부분들. 꼭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형사와 손님들의 이미지, 그저 호명을 통해 존재하지만 극 전체, 7호실 세계 전체를 뒤흔드는 건물주. ‘이름’이 아닌 계급으로 불리는 대부분의 인물들(두식과 태정은 한욱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는다.) 두식이 이제 살았다고 외치면 누군가 죽고, 두식의 얼굴이 꼭 시체 같다고 하면 바로 뒤엔 시체를 비춘다. 자기가 일하는 곳이라면 다 잘된다던 한욱의 말처럼 한욱의 위치에 따라 사람이 몰리는 가게들의 디테일. 이번에는 장면과 대사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주시했는데 너무 재밌어. 역시 영화는 감독의 세계인 걸까.



조선족과 타자의 이미지


감독은 조선족 한욱을 극 중 ‘타자 중에 타자’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사과의 시선마저 지우지는 않는다. 지워지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한욱의 서사를 잠깐이나마 비춰준다. 반쯤 끊어진 가방을 메면서도 택시비나 하라고 준 돈으로 두식과 함께 먹을 햄버거를 사가는 한욱. 거스름 돈을 불우이웃 저금통에 넣는 손. 그를 쳐다보는 아르바이트 생의 시선과 조선족이라는 말에 급격히 표정을 굳히는 부동산 중개인. 끝없이 그는 조선족이니까 별 문제없다고 화만 내던 두식. 하지만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 보였던, 다른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던 두식은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영화는 두식에게 남들은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는다. 아쉬운 점이 분명 많음에도 적어도 나는 이제껏 한국 사회가 그려온(그리하여 그렇더라고 믿어온) 조선족 이미지를 다시 생각했다.



이상하리만치 좋은 나의 7호실 (개인적인 이야기)


꼬박 일 년 전, 11월에서 12월 이맘때의 나를 버티게 해 줬던 태정을 다시 만났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오늘 7호실의 문을 다시 열자 디비디 방의 그 퀘퀘 묵은 냄새와 함께 작년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느 과거가 그렇듯 웃고 넘기기엔 아직도 춥고도 외로웠던 2017년의 겨울이다. 네 잎 클로버 스티커를 붙였다 뗐다 오백 번은 고민하는 태정에 위로받기도 했고 “남들 다 힘든데,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죠 애도 아니고.”라고 말하는 태정이 너무 슬퍼 한참을 -경수가 아닌- 태정의 그려지지 않은 인생을 그려보기도 했었다.(자극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그때는 자극받을 힘조차 없었다.) 일 년이 지난 나는 이만큼만 변해 다시 겨울을 맞이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더불어 도경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7호실로 나는 솔직히 처음으로 그의 모습에 놀랐다. 잘 안다고 생각했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비웃는 듯 도경수는 놀랍게도 완벽히 ‘태정’이 되었다. 내가 몰랐던 도경수가 연기하는 태정을 따라잡기 위해 7호실을 더 많이 본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오늘도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만점 영화에 완전히 이질적인 한 영화가 자리 잡았었다. 그 이후 딱 일 년이 지나 나는 곧 개봉할, 큰 배급사에, 각광받는 영화의 주연이 된 너를 기다린다. 나는 또 얼마나 놀랄지 모르겠지만 내년의 나는 여전히 너의 영화를 기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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