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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Mar 13. 2019

명확한 아쉬움

영화, <1919 유관순>

명확한 아쉬움
영화, <1919 유관순>


<1919 유관순>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유관순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는 정보만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시영 전 무대인사에서 배우들과 감독이 보여줬던 진솔함에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받은 감동이 영화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의문스러운 물음표만 잔뜩 넘겨받은 영화 <1919 유관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항거>에 대한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919 유관순>은 3.1 운동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화로 유관순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에서 제작을, 대통령 직속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공식 후원을 받은 작품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유관순과 8호실 여성 독립운동가들 10명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다. 


유관순뿐만 아닌 8호실의 여성 독립운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행적을 보여주었고 개개인의 독립운동가 삶을 만나는 것은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 특히 역사에서 지워졌던 여성의 삶을 다시 찾고 남기고 기록하기로서 영화는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던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장르 영화를 감상할 때 가지는 두 가지 중심이 있다. 첫째는 다큐멘터리 장르에 맞는 ‘팩트’를 잘 구사했느냐이다. <1919 유관순>은 100년 전 재연과 현재의 인터뷰가 교차하는 다큐멘터리이다. 


<1919 유관순>을 감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항거>의 역사적 사실 왜곡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https://v.kakao.com/v/aXbz6R0d0Z


<항거>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 장르이고 극적 연출을 위한 어느 정도의 왜곡과 과장은 허용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의 아픈 역사였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독립운동가들과 후손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좀 더 예민한 감각으로 주의해야 했다. 


<1919 유관순>은 <항거>보다는 좀 더 역사적 고증에 신경 썼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는 그간 몰랐던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와 당시 시대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동시에 아쉬웠던 점은 사실에 대한 재현 방식이었다. 재연과 인터뷰가 교차하는 연출은 학생 때 자주 봤던 다큐멘터리들과 같이 어색하고 세련되지 못해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고문 재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를 검색했을 때 고문 소재로 영화를 소개하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고문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재연이었다.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받은 고문은 재연한 것보다 더 심했음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불쾌했던 지점은 왜 고문 장면을 보여 줘야지만 그 당시가 힘들었음을 납득한다고 생각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분량이 많고 자극적이었던 고문 장면이 굳이 필요했느냐 묻고 싶다. 고통을 보여줘야지만 일본 만행에 분노가 치밀고 독립 운동가를 기억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 유관순과 독립 운동가들을 이야기하는 인터뷰이들 중 종교인들이 꽤나 상당수를 차지했고 초반 유관순의 서사에서 유독 종교적인 대사들이 많았다. 유관순이 움직이는 이유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당혹스러웠다. 물론 당시의 상황에서 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원동력이었고 유관순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에게도 그랬음을 안다. 그렇지만 교차되는 100년 전과 현재의 장면들 모두 종교적 성격이 강했고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보여줄 다른 측면들도 많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남았다.


다큐멘터리 감상에 대한 내가 가지는 또 다른 중심은 “왜 하필이면 이 사실들이 영화 매체의 형식으로 만들어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납득과 설명이 충분한지이다.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떠나서 감상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1919 유관순>은 해당 질문에 대한 충분한 설득을 하지 않았다. 허술한 연출에 과한 연기에 정부 지원 다큐멘터리이라는 점을 감수하고도(애초에 정부가 지원하는 영화라면 더 좋은 퀄리티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영화 매체로서의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정보와 숭고함을 전하고 싶었다면 더 정확하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매체들은 많다.(다른 형식의 영상 콘텐츠 또한 다양하다.) 고통스러웠던 고문 장면이 감정적 호소를 가진다고 생각하고 굳이 남겨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으면 전혀 반대 입장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영화를 연달아 두 편이나 볼 수 있다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들, 그리고 '역사의 큰 흐름'이라는 명목으로 지워졌던 여성들의 역사는 언제나 나에게 나아가는 깨달음이 된다. <1919 유관순>이 아쉬운 건 아직 알려지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시대의, 여성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유이다.





2019 · 한국 · 다큐멘터리
1시간 19분 
심상민 
이새봄(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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