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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Mar 06. 2019

어머니와 아들보단 타인을 ‘우리’로 묶어나가는

영화, <당신의 부탁>


어머니와 아들보단 타인을 ‘우리’로 묶어나가는
영화, <당신의 부탁>


2019.01.02 기록,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읽기에는 그다지 친절하지도 정보적이지도 않은 단상들입니다




당신의 부탁의 영어 제목은 Mothers이다. 영화에선 총 7명의 주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모두 ‘mother’의 정체성을 가진다. 여기서 mother은 낳고/기르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정체성으로 7명의 여성 캐릭터를 mother로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낳지 않았지만 기르는 엄마(효진, 연화, 서영)/ 낳고 기르는 엄마(명자, 미란)/ 낳고 기르지 않은 엄마 (주미, 종욱 친모)


7명의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과 모두 연결되어있는 종욱은 ‘아줌마와 엄마’이라는 아주 간단한 이분법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관계를 맺어갈수록 종욱은 헷갈린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효진을 절대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주미에게는 친아빠가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종욱은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엄마나 아줌마로 불리는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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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미 캐릭터를 생각했다. 정신 못 차리는 종욱이 주미에게 ‘네가 엄마잖아’라고 다툴 때 주미는 종욱에게 ‘너가 나 나쁜년 만들었잖아’라고 말한다. 사회에서 미혼모(단어가..)에게 프레임을 덧붙이는 과정 아닐까. 아무도 주미와 관계를 맺은 남성의 책임과 의무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양육할 형편이 안되는 상황에서 내린 최후의 결정이 ‘너는 엄마’라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다시 돌아와 비난 받는다면 도대체 주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영화는 사실 이에 대해 많이 고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주미에게 억지로 죄책감을 감싸 안은 채 엄마로 남게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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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효진과 종욱의 관계는 아줌마에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다. 효진에게 당신의 ‘부탁’으로 받아들인 종욱이라는 존재는 나와 함께 ‘당신’을 기억하게 될 유일한 ‘우리’로 변하게 된다. 효진은 종욱에게 처음부터 서로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며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은 싫지만 엄마라고 부르라고는 한 번도(단언하기엔 기억력이..) 강요하지 않는다. 비록 시댁의 압박과 충동적 결정이었으나 효진은 먼저 떠난 남편, 경수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종욱을 받아들인다. 둘의 근본적 공통점인 경수에 대해 서로 몰랐던 이야기들-“아줌마한테는 이야기 안 한 거겠죠” “오빠가 초코케익을 좋아했어”-을 나누게 된다. 한 번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효진은 종욱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장례식 때의 일을 회상한다. 서로가 경수의 삶의 각각 다른 일부였음을 인정하는 마지막 즈음의 장면들은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보단 타인을 ‘우리’로 묶어나가는 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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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 대해선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내 생각은 이렇다. 연화의 서사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질적이다. 낳지 않은 종욱을 기르다가 신병을 앓고 도망쳐 나온다. ‘죽고싶다’보다 절망적인 ‘살고싶다’의 감정에서 김선영 배우 진짜 짱이다(갑자기 찬양) 여튼 그런 연화에게 끝까지 눈에 밟혔던 건 종욱. 연화는 효진의 부탁으로 종욱에게 ‘낳아준 어머니’인 척을 하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연화가 전하는 말은 ‘너도 많이 힘들었겠다며, 미안하다’는 것이다. 연화는 종욱이 자신이 낳아준 어머니가 아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연화의 대사는 어른들이 가라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닌, 그래서 자신의 책이 찢어졌다고 생각하는 종욱에게 건내는 사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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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단상들


영화 속 여성들이 모두 전부 굳이 ‘엄마’의 역할일 필요는 있었을까? <안토니아스 라인>이 떠오른다.

효진과 명자가 다투는 장면은 진짜 불경심넘치는통쾌함을 느꼈다..그리고 종욱이 이자식 나는 대답 안하는 자식들이 제일 싫어…

<당신의 부탁>을 검색하다가 씨네 21 김혜리 기자와 임수정 배우의 인터뷰를 봤는데 임수정 배우 멋진 사람...인상 깊었던 장면은 초반에 미란이 효진에게 걱정하는 장면과 대비되는 효진이 종욱을 위로하는장면. 정확하진 않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에 네가 포함될 수도 있지만, 누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그거 역시 너야’ 정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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