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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Mar 23. 2019

결핍이 수놓은 서로의 우주를 만난다는 것

영화, <마카담 스토리>


결핍이 수놓은 서로의 우주를 만난다는 것
영화, <마카담 스토리>


다가오는 우연에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영화 <마카담 스토리>는 우연한 영화다. 우연히 만나는 세 사람과 세 사람. 우연히 함께 본 영화와 우연히 먹게 된 쿠스쿠스와 우연히 맞는 밤바람, 그리고 우연히 나누는 비밀들. 가벼운 우연이 마음을 잘게 흔들 때, 결핍의 존재들은 기어이 서로의 우주를 채운다.


프랑스의 축축한 빌딩은 멀리서 봤을 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그 안엔 노래가 가득하다. 마치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처럼 말이다. 영화는 그곳에 사는 세 명의 사람들이 또 다른 세 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밤에 엘리베이터를 타고요, 카메라에 필름도 없어요>


2층에 사는 남자 스테른코비츠(구스타브드 케르베른)는 연대를 모르고 미련한 '유령'이다. 모두가 찬성하는 엘리베이터 수리를 혼자 반대하고 운동 기기의 자동 프로그램을 멈추지 않다 결국 다치고 만다.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남자는 아무도 없는 새벽이 와서야 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과자를 사러 나간다. 그렇게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은 밤에 근무하는 간호사(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여전히 미련한 남자는 사진작가라는 거짓말로 여자와의 내일을 약속한다.  



<전화 좀 써도 될까요?> 


프랑스의 작은 빌딩에 툭 하고 떨어진 나사의 낙하산. 문을 두드리면 나오는 이는 일단 미국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어르신. 우주 비행사 존 메켄지(마이클 피트)와 집주인 하미다(타사딧만디)는 오로지 바디랭귀지로만 소통한다.  


데리러 오려면 이틀은 있어야 한다는(!) 나사의 통보에 존은 꼼짝없이 하미다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다. 감옥에 간 아들에 혼자 살고 있는 하미다는 난데없이 찾아온 존을 마치 원래부터 같이 살던 사람인 냥 따뜻하게 대해준다. 비록 알아듣는 단어는 ‘Toilet’ 뿐이지만 말이다.  



<늘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해?> 


아침부터 세워진 트럭, 올라오는 사람, 언뜻 보이는 옆 집에 쌓인 상자들. 누군가 옆 집에 이사를 왔다. 혼자 사는 소년 샬리(쥴 벤쉬트리)는 문이 고장 나서 들어가지 못하는 잔(이자벨 위페르)에게 도움을 주지만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받지 못한다.  


장난치는 샬리에게 잔은 “늘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해?”라며 무안을 주지만 글쎄. 타격감은 제로다.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며 똑바로 상대방을 쳐다보는 샬리와 다르게 잔은 숨기는 것도 피하는 것도 많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배우인 잔이 옛날에 만든 영화를 함께 보게 된다.   



“우주의 별이 구멍이고, 신들은 그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해요.” 나사의 우주 비행사인 존이 하는 얘기이니 진짜라고 믿자. 흔히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우주를 지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우주에도 세상을 볼 수 있는 별이자 구멍이 있을 것이다.  

영화 <마카담스토리>의 주인공 여섯 명에게 세상을 보는 구멍은 ‘결핍’이다.

유령같이 일하는 새벽의 간호사, 밤에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거짓말쟁이, 모르는 곳에 불시착한 우주 비행사, 감옥에 있는 아들을 두고 혼자 사는 노모, 한물 지난 배우, 어딘지 쓸쓸한 소년.


<마카담 스토리>는 화려한 색 하나 없는 무채색의 세계이다.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영화의 것보다는 삶의 것과 닮아 있다. 영화는 구름이 뿌옇게 햇빛을 가리는 것처럼 잔잔하게 그리고 서서히 흘러간다.  운명이라기보다는 우연에 가까운 만남들이 밍밍해 보이고 툭 내뱉는 약속들이 시시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서로의 ‘내일’을 약속한다는 것 일수도 있겠다.




<그러니 편하게 해요. 그런데 할 거면 제대로 해요. 캐스팅 때문에 말고요. 이 순간을 위해> 


하미다는 존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고 잔은 샬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꽁꽁 감춰온 상처와 비밀을 내보이는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내밀한 비밀을 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것저것 재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적이 분명한 관계가 넘친다. 그 속을 허우적대면 비밀은 쌓여만 가고 피로는 더해져 마음속 우주에 별이 뿌옇게 빛난다. 문득, 우연히, 불시착한 우연으로 시작된 만남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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