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사색, 그리고 글쓰기
대학 입학하고 2,0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 용도가 아니다. 그냥 재밌어서 읽은 것이다. 동시에 항상 7~8권의 여러 권을 읽는다. 장르는 소설, 고전, 철학, 신학, 수학, 과학, 경제, 금융, 역사, 정치, 수필, 심리학, 영화, 예술, 음악, 의학, 법학, 자기 계발서 전 방위적으로 읽는다. 나는 수집 강박이 있어서 책을 빌려서 읽지 않는다. 무조건 종이책으로 사서 읽는다. 그냥 그게 더 좋고, 종이 냄새가 좋기 때문이다.
이전에 21년도에 안양 성결교단 십자가교회를 다닐 때 강산 목사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 외에는 사고의 폭발적 성장을 할 수 없다고. 강산 목사는 한국 개신교계에서 그 잘났다는 미국 박사 학위를 받은 수많은 대형교회 목사들보다 똑똑하고, 깊이 있고, 열정이 있었고, 사회적 책임 의식도 굉장히 강했다. 그의 밑에 있는 과정에서 난 중요한 건 학위가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대학 들어와서 로스쿨에 가려는 아이들을 많이 본다. 로스쿨에 가려면 보통 학점, 토익, 리트(Leet)가 좋아야 한다. 근데, 내가 로스쿨에 가거나 준비하는 아이들, 선배들을 관찰한 결과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로스쿨에 가기 위해 학점에 목을 너무 맨다는 것이다. 무엇을 배우냐가 중점이 아니라 이 교수가 얼마나 학점을 잘 주느냐가 이들의 관심사이다. A0가 나오면 로준생들이 항의문자를 보낸다는 교수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곤 한다. 또한, 입시에서 제일 중요한 리트에 너무 많은 자본과 시간을 쏟는다. 이걸 위해서 과외나 막대한 비용의 인강,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너무 한심해 보인다.
대학 교수들도 책을 읽지 않는다. 1학년 때 와 2학년 때 미국경제학 박사에 관심이 있어서 경제학과 교수들과 몇 번 면담을 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경제학에 깊이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문에 대한 넓이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 의식도 별로 없어 보였다. 이들은 학창 시절 군부독재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학생 운동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하였고,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해 한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근데 그렇게 좋은 교육을 많이 받았으면서 한국에 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가 한 명도 없단 말인가.
어떤 아이가 대원외고를 나오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조기졸업으로 3년 동안 폭넓은 독서 없이 전공 공부만 하고,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가서 판사가 된다고 치자. 과연 이 사람이 좋은 법조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사람들은 또 다른 '윤석열', '한동훈', '우병우'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한다.
책 좀 읽어라 제발. 그리고 그냥 내 관심 분야부터 차근차근 읽어라. 그러면 독서가 엄청난 취미가 될 것이다. 대학생이 책 읽지 않으면 사회에 나와서는 스스로 사고할 수 없는 기계가 되어 버린다. 한국 사회의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이유 중에 하나가 너무나도 빈곤한 독서 문화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책 읽기에 취업이 너무 어렵고, 근로자가 되어도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이 너무 길다.
내 칼럼을 지금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마음에 드는 글도 있었을 것이고, 짜증 나는 글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 25살이다. 20년 뒤의 내가 기대되지 않는가? 난 성인이 된 뒤로 매일 독서하고, 매일 깊이 사색하고, 매일 글을 쓴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 세 행위는 하나의 오퍼레이션 시스템으로 블록체인처럼 깊게 연결되어 나의 사고와 행동의 패러다임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과 깨달음, 그리고 성장이 있을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항상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끝없이 배우고, 성찰하고, 성장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 목적형 독서는 지칠 수밖에 없다. 리트 점수 올리려고 책 읽는 사람들은 목적과 수단이 전치된 사람이다. 차라리 그럴 거면 로스쿨 가지 않는 게 사회에 더 효용이다.
오직 재미있게,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이동진 평론가가 내게 알려준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