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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의 이모저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조영래 변호사

by 바람
KakaoTalk_20250411_201026223.jpg Empire State Building.

당신은 '노동운동'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좌파, 진보'가 떠오르면 당신은 한국 정치 지형 우경화의 산물이다. 사실 소수의 사업가를 제외하면 경제활동인구 대다수가 '노동자'다. 2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영웅, 영국의 총리 윈스천 처질도 보수주의자이지만 '노동'과 관련해서는 친노동 정책을 항상 주장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또한 보수주의자이지만, '친노동' 정책을 항상 주창해 온 사람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어떠한가? 한국은 '노동의 이중구조'가 너무 극심하다. 미국과 달리 국제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의 수가 너무 적고, 중소기업들은 너무 잠재력이 부족하다. 대기업의 임금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 또한 너무 극심한 것이 비극이다. 국책연구기관인 KDI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50인 이상 기업의 일자리 비중은 14%로 OECD 32개국 중 가장 낮았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데, 대졸자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근데, 이 '노동'운동 이야기만 하면 '빨갱이' 프레임을 씌어버리는 극우 세력들이 존재한다. 거시경제학 수업을 듣다가 교수가 현대자동차 '귀족노조'라는 말을 쓰며 비판하는 말을 쓰길래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귀족노조'라는 단어는 한국밖에 쓰지 않는 단어이다. 그리고, 그 공장 노동자들이 아무리 기득권 놀이를 하더라도 그들의 임금은 1억을 넘지 못한다. 50대에 육체노동으로 몸이 다 상해서 퇴직했다. 일용직이기 때문에 퇴직금은 없다.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전문대를 나와 지식노동도 할 수 없다. 남은 50년은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는가. 심지어 모아놓은 돈은 대부분 암치료를 쓴다. 유럽의 경우 '노조'는 굉장히 정당하게 평가받고,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노동 3권은 헌법적 가치이다.


이 한국 정치 우경화에서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한 한 남자를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조영래. 법을 배운 전태일이라는 아명을 가지고 있다. 1990년 43세의 나이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은 가치 있었다. 경기고 수석 입학, 서울대 법대 전체 수석 입학. 서울대 재학 중에는 박정희 정권이 학생운동 탄압을 목적으로 조작한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 중 양심 있던 우배석 판사 '김인중'은 군사 독재 정권의 음모에 반대하여 '무죄'를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결국 유죄를 선고했다. 학생 4명이 군사정권을 흔든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걸까. 쨋든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학생운동 수배 중에도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또한, 이념 논리에도 빠지지 않고 오직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만을 위해 싸우다 삶을 마감했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변호, 연탄공장 근처 거주 진폐증 시민 무료 변호, 전태일 평전을 지어 전태일의 죽음을 세상을 알렸다. 더 나아가 사법사상 초유의 대규모 공익 집단 소송 '망원동 수해 사건' 변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이외에 그의 업적은 지면을 다 할애해도 부족하다. 그는 슈퍼히어로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슨 삶을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매일 호텔에서 섹스하고, 와인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돈에 종속되어 불합리한 사회에는 눈을 감은 채 살 것인가? 아니면 한번 사는 인생, 타인에게, 한국 사회에게 더 나아가 인류사에 유익을 남기고, 이름을 남기고 죽을 것인가? 기왕이면 후자가 낫지 않을까.


조영래 변호사는 정치도 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였다.


폐암으로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가 아들 조일평에게 엠파이어 스테이틀 빌딩을 주제로 남긴 엽서는 나의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이 건물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아빠는 네가 이 건물처럼 높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되거나 제일 유명한 사람,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건물이 얼마든지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다. 건강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하루하루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높은 소망인지도 모르겠지만...."


<일 평에게 1990. 1. 18.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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