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현우진 그리고 수학의 왕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나랑 같이 전교권에서 놀던 친구들은 신성고등학교 1학년 수학의 괴랄함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들어와서 경제수학(1), 미분적분학, 선형대수를 들었지만, 신성고등학교 1학년 수학이 훨씬 어려웠다. 1학년 때 겪은 수능 수준을 뛰어넘는 대학교 증명형 문제들에 익숙해진 덕분에 인문계열 수학은 나에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그 주범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괴짜 수학 천재 S 선생이었다. S 선생은 서강대학교 수학과를 최초로 최우등 조기졸업한 사람이다. 라틴어로 말해 Summa Cum Laude. 내가 수업시간에 앞자리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기도 하였고, 개인적으로 이야기 한 경험도 있었다. 그 또한 나와 비슷하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에서 피 터지게 공부해서 지금 수학 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가원에 수능 공식출제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고, EBS 수학 개념서 '수학의 왕도'를 집필하기도 했다. 일반고등학교 제도권 교육 내에서 보기 드문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천재였다. 내가 2학년이 되고, 사생활 이슈로 다른 곳으로 떠났다. 지금은 메가스터디 의대 합격관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2학년 때 그는 나보고 항상 열심히 공부하는 게 참 보기 좋다고 했다. 감사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허준이 교수가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으로 2022년 필즈상을 수상했다. 주입식 교육이 난무하는 한국 교육계에서는 보기 드문 아웃라이어였다. 허준이 교수는 서울대 졸업 축사 때 자신의 20대는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2022년 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수학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입시 구조가 문제예요. 수학 스트레스를 없앨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수학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년부터 입시에 수학을 안 넣겠다고 하면 바로 해결되지 않을까요."
스탠퍼드 수학과를 졸업한 현우진은 메가스터디 1타 강사다. 그의 걸작 '뉴런'은 한국 수능 수학 공부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피식 대학에 출연한 현우진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경우 초, 중, 고등학고 선생님들의 학력이 박사이다. 박사들이 교사를 맡기 때문에 공교육의 질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대학 진학률이 거의 90%다. 공부에 뜻있는 아이들이 김나지움으로 진학하면서 학구적인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일찍 경제활동을 하고 싶은 아이들은 성인 혹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돈을 벌고, 연애를 하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또한, 독일 교육 시스템은 시험 날짜를 알려주지 않아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평소 실력으로만 평가를 하고, 시험 스트레스도 주지 않는다.
종종 현우진이나 S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공교육에 가득하고, 허준이 교수의 말처럼 입시에서 수학을 빼버리거나, 꼭 필요하다고 있는 부분만 P/F 방식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21번, 30번 풀 시간에 차라리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으며 깊이 사색한 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수학을 깊이 공부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수학은 분명 재밌고 위대한 학문인데, 이게 시험이나 입시용으로 변질되어 버린 세태가 마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