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angel)
2월 말의 일이었다. 퇴사도 얼마 안남았고, 일도 거의 다 마무리 되어서 기분 좋게 퇴근했다. 6시 칼퇴 후 종각역 1호선에서 금정역 1호선으로 이동했다. (물론 1시간 서서 가는 건 항상 고되지만...)
'아, 직장인들 진짜 존경스럽다. 어떻게 이걸 매일 할까. 우린 왜 일해야 하는거지.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 표정 보면 다들 행복해 보이지가 않던데...'
뻘 생각 하다가 금정역 도착. 날도 춥고, 배도 고파서 얼른 집가서 밥 먹고, 목욕한 뒤에 뻗어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빠가 오늘 반찬으로 뭐해 놓았으려나. 오늘은 뭔가 칼칼한 칼국수 한 그릇 땡기는데.
금정역 1호선에서 내가 지금 전세 살고 있는 서안이노빌로 가려면 4번 출구로 나온 다음에 11-5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한다. 배차 간격은 5~15분 정도. 아, 오늘은 5분컷 제발 하나님.
룰루랄라, 4번 출구를 내려오는데, 뭔가 느낌이 쎄하다. 계단 밑에 한 남자가 쓰러져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어떡해. 어떡해."만 말하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슈퍼 오지라퍼 이용규 바로 출동.
일단 그 남자에게 다가가 그를 스캔한다. 굉장히 남루한 옷차림과 만취 상태. 블루컬러 노동자로 보인다. 머리와 입에서 출혈이 심한 것으로 보아,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다.
'일단, 119 불러야겠다.'
119에 빠르게 신고를 한 뒤에, 남자를 계속 부축하고 있었다. '아 이제 어떡하지. 대략 난감.' 근데, 이때 한 여대생 등판. (이 사람도 오지랖이 넓어 보인다.) 그러면서, 자기가 근처 약국에서 알콜솜을 사오겠다고 한다. 금방 다녀와서 남성의 출혈 부위를 지혈해 주었다. 구급차는 10분뒤에 금방 왔고, 아저씨는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때, 구급차 기다리면서 의식불명의 아저씨가 우리 두명을 붙잡으면서 핸드폰을 꺼낸다.
"전화번호.. 전화번호 좀 남겨주세요..."
나는 그냥 내 전번 주었고, 그 여대생도 그에게 전번을 주었다. 내 잠바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그녀는 나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지.
다음날 그에게 연락이 왔고, 어제 출혈난 곳은 잘 꿰매었고, 덕분에 살았다며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꼭 이 은혜를 갚겠다며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하였다.
그후, 그는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고, 카톡 새로고침을 해도 그는 뜨지 않는다.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 사건 전날 밤에 묵상한 말씀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