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root)
작년 1학기에 연세 JOY 친구들과 서울 아차산에 놀라간 적이 있었다. 아차산은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서, 여유롭게 등산하기 좋은 곳이었다. 공기도 맗고, 날씨도 쾌청해서 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가장, 인상깊었던 기억은 하산(下山)할 때였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황혼(黃昏)이 시작되며 하늘이 몽환적인 보라색으로 변해간다. 그러다가 계단을 내려 가는데, 내 눈 앞에 아까 점심 때 보았던 서울 시내와는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너무나도 찬란한 야경(夜景)들. 그건 차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 좋다... 한국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야경을 바라보면서 동갑내기 친구 D랑 이런 대화를 했었다.
"D야, 넌 나중에 어디서 살고 싶어?"
"난 유럽에서 살고 싶어. 여유롭고, 좋더라고. 너는?"
"난 여기 남아 있으려고..."
어제, 사촌이자 증권사 이사인 S형과 상법 개정안을 두고 모바일 메신져로 소통을 하였다. 형은 대원외고를 나온 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오고, 성균관대에서 경제학 석사, KAIST에서 금융공학 박사를 한 수재이다. 형이랑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 말미에 형이 자제 분을 외국대학에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외국에 정착해서 살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영국령 제주 국제학교 다닌다. 여기 학비는 일반 중산층에서는 감당 못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솔직히, 한국 객관적으로 망하는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세계 경제학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은 논리와 경제 및 사회 현상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요소도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대화가 끝나고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라.
'한국에서 재일 좋은 교육 많이 받은 사람이 이러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려나. 참 암담하다."
다들 도망치거나 탈출할 생각만 한다. 물론, 그걸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박수쳐줄 만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계 자체의 이익집단화. 의협, 변협의 자체 이익집단화. 정치를 위한 정치. 공직을 위한 공직. 권력을 위한 권력. 교회를 위한 교회. 돈과 섹스에 환장하는 '가오나시'들. 마약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연예계. 사회적 책임 없는 교수들. 뿌리가 너무 깊다.
괜찮다.
다 뽑아 버리던지, 뿌리를 불에 태워버려서 거름으로 만든 다음에, 건강하고 튼튼한 새로운 나무를 심고, 기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인스타에 글을 쓰며,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독자분들도 시도 해보길 권하고, 기도한다.
괜찮다. 다 잘될 것이다. 언젠가는 우거진 숲이 되겠지. 엄청난 숲.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곳.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누가복음 14장 18~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