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自由)
자유. 자유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을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 내가 신을 믿을지 안믿을지 정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자유. 내가 인간관계를 원하는 만큼 맺을 수 있는 자유. 내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사람을 정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할 수 있는 자유. 내가 무슨 직업을 가질지의 자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내가 무슨 글을 쓸지에 대한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2021년 5월에 입대를 했다. 훈련을 받는데, 강당에서 한명이 갑자기 쓰러졌다. 심정지로 사망했다. 참혹했다. 부모는 통곡했다.
826기 대표 연설을 맡아서, 연선물을 화장실 변기에서 전등에 비추어서 자필로 작성했다. 고인(故人)을 기리고 싶어서, 내용을 넣었다. 그 분과 같은 호실을 쓰던 동기들에게 찾아가 신상에 대해 물었다. 다들 충격에 빠져 있어서, 말을 많이 해주지 않았다.
연설을 하였고, 연설 내용에 나는 사라진 영혼에 대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21살. 나랑 동갑. 어느 집 귀한 아들. 부모가 사랑으로 낳은 아들. 첫 울음소리. 첫 걸음마. 처음으로 ‘엄마’라고 외쳤겠지. 초등학교에 들어갔겠지. 중학교에 들어갔고, 사춘기가 되었겠지. 성(姓)에 관심이 생겼겠지. 고등학교에 갔겠지. 기계처럼 공부만 했겠지. 대학에 갔겠지. 코로나여서 답답했겠지. 1학년만 마치고 입대를 했겠지. 훈련을 받다 심장 멈추었겠지.
왜 우린 여기 있는 걸까? 왜 우리의 자유는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는걸까? 복잡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사이 여자 동기들은 교환학생을 다녀오거나 4학년이 되었다. 비난할 생각을 없지만, 뭔가 이상하다. 분명 영관급 장교나 실무진 부사관들에는 여성분들도 많은데. 나보다 총도 잘쏘던데. 코로나 1년, 군대 2년이 지나니 23살이더라.
진격의 거인을 가끔 본다. 주제의식에 비해서 너무 자극적으로 만들어서 많이 보지는 않지만, 에렌이 자유를 꿈꾼 걸 생각한다. 자유. 에렌도 자유를 원했겠지. 조사병단에 들어가서 벽 너머를 꿈꿨겠지. 리바이, 미카사, 아르민, 쟝, 샤샤, 한지. 다들 자유를.
뭔가 나는 내 자유로 행동을 하는데, 자꾸 무언가 정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는 것인가. 정말 운명이란게 정해져 있고, 삶이란 불가항력적인 대상인건가? 스티븐 호킹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게 바람직한 것인가?
성서에서 가룟 유다와 사울의 이야기를 본다. 이들의 운명도 정해져 있던 걸까? 바울이 학살한 초대 기독교인들의 운명은? 영국 청교도인들이 학살한 인디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운명은? 신천 대학살 때 죽은 사람들의 운명은? 제주 4.3 학살자들의 운명은? 5.18 학살자들의 운명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운명은? 이태원 참사, 제주공항 참사자들의 운명은?
정말 정해져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지프스가 매일 돌을 올리는 것처럼. 운명은 바꿀 수 없더라도. 주어진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불의에 항거하고,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시간을 쏟고 싶다. 예정론인지 자유론인지 신학자들의 허례허식적인 글들에 지친다. 물론 신학 매우 중요하다. 교리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운명이 정해져 있더라도, 그 운명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도 글을 쓰면 저항(resistance)한다. 기록하고, 기억한다.
보고 싶다. 나의 전우야. 미안하다. 나의 동기여.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3장 [일곱개의 뺨]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