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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멸(破滅)

by 바람

제일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파멸’이다. 철저한 파괴. 철저한 파멸. 철저한 척결. 철저한 화형. 철저한 칼날. 철저한 대폭발.


친일파 척결에 실패한 대한민국과 달리, 2차 세계대전 나치에 부역한 인물들을 척결한 프랑스처럼. 깨끗한. 나 자신이 더러우면, 자신도 파멸.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면서 타노스의 핑거 스냅(Snap)을 보면서, 참 의아했다. 왜 절반만 멸족시킨거지. 나같으면 나를 포함해서 전체를 날려버릴텐데. 아예 다 무(無)로 만들어버릴텐데. 그냥 내핵부터 다 폭발시켜서 지구랑 이 우주. 평행우주도 존재하면, 거기도 다 싸그리 파괴할텐데.


나의 칼럼을 쭉 읽어본 사람이라면, 나는 01년생 25살치고는 고생을 많이 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극심한 빈곤, 부모의 외도와 죄악, 누이의 견제, 성희롱, 군대 내 부조리, 학사경고, 중도휴학, 영구적인 양극성 장애 2형. 몇가지는 앞으로 또 일어날 것이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솔직히, 이럴 때마다 정말 진실된 속마음은 항상 똑같다.


‘아 시발 ㅋㅋ 뒤질뻔 했네 ㅋㅋ. 이걸 사네 ㅋㅋ’


구약 39권을 창세기부터 말라기부터 읽어보면 참 불가사의하다. 신(神)이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인 내가 곰팡이를 배양한 것보다도 초월적인 차이의 행위다. 인간이 죄를 지었다. 바벨탑을 쌓는다. 노아의 홍수로 멸족시킨다. 근데, 그 이후에는 멸족 시키지 않는다고 약속한다. 그 징표로 무지개를 주었다. 이후 말라기까지 구약의 서사는 똑같다. 인간은 또 죄를 짓는다. 계속 죄를 짓는다. 서로 죽이고, 탐욕을 부리고, 강간하고, 학살한다. 다른 신화와 다르게 구약의 성부(聖父) 하나님은 인간을 다시 멸족시키지 않는다. 약속(언약)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곰팡이보다 못한 미생물을 배양했다고 가정하자. (경제학은 가정의 학문이다. 미안하다.) 근데, 이 미생물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막 죽이려고 든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성깔이 더러운 나는 당장 비커에 있는 미생물들을 깨끗한 물로 씻겨내고, 분노가 없어지지 않으면 그 비커까지 깨트려 버릴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비커에 새로운 미생물을 배양할 것이다. 내 말을 아주 잘듣는 미생물이 나올 때까지. 하지만, 구약의 하나님은 그러지 않는다. 인내하신다. 기다리신다. 지켜보신다. 끝끝내 참으신다. 호세아서(Hosea)를 읽어보길 바란다. 신(神)이 고통과 슬픔에 신음한다. 사랑으로 만들어 놓은 자식들끼리 못 죽여서 안달이다.

결국 말라기 이후 침묵하신다. 긴 침묵이 흐른다. 자신의 유일한 독생자(獨生子)를 결국 파송한다. 죄악을 끝내기 위해서. 구원 프로젝트. 성자(聖子)는 결국 십자가에 못박혔다. 모든 것이 역전되었다.


20살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은 뒤 나는 한줄 평으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누구나 싱클레어에서 데미안이 되어간다.”


나루토에서 주인공 중 한명이 사스케는 상처와 트라우마에 복수와 증오에 눈이 먼다. 모든 것을 파멸하고자 한다. 모든 것을. 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솔직히 다 마음에 안든다. 나 자신까지도. 근데. 참 의아한게. 성경을 읽을 때 만큼은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 이런 신(神)이라면 믿고 싶다. 이런 분이라면... 증오가 아닌 사랑을 선택하자, 용규야. 그래.


가끔은 항상 밝기만한 ‘나루토’가 될 때가 있지만, 대부분은 굉장히 차갑고, 굉장히 냉철하고, 굉장히 공격적인 ‘사스케’로 산다. 하지만, 내가 믿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겠지. 이타치와 나루토의 사랑이 사스케를 구원했던 것처럼.


“お前は俺をずっと許さなくていい…お前がこれからどうなろうと俺はお前のことをずっと愛している”


“이 형을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네가 어떻게 앞으로 되든지, 형은 너를 항상 사랑하고 있단다. (이타치가 사스케와 이마를 맞대며. 성불(成佛)하기 전.)”


오늘도 악(惡)이 아닌, 선(善)을 선택하고자 노력한다. 왜냐면 나를 사랑하는 그분께서 선(善)하시니까. 파멸(破滅)과 멸족(滅族)의 신(神)이 아닌, 사랑(Love)과 용서(Forgiving)의 신(God)이니까.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눈덮힌 램프 中, 한강 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누가복음 18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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