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骨折)
당신은 뼈가 부셔져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뼈가 부셔지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난 많다. 기억에 남는 사례 몇가지를 적는다.
사례 1.
10살 때의 일이었다. 치매 걸린 친할머니를 모시기 싫었던 큰아버지가 우리집에 할머니를 맡겼다. 할머니는 자주 오줌을 지리셨다. 더 비참한 건 자신이 오줌을 지리셨다는 사실을 인지를 못한다는 것. 어느날 밤이었다.
아빠가 술먹고 집에 들어왔다. 소리를 지르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집 안의 가구들을 모두 박살낸다. 티비에 금이가고, 화분이 깨지고, 거울이 깨진다. 누나와 나는 작은 방에 숨는다. 할머니가 그 순간 오줌을 지렸다.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걸레로 거실 바닥에 흩뿌려진 오줌을 닦는다. 엄마가 혼자가 중얼거린다.
‘어머님, 여기에 오줌을 지리시면 어떡해요. 다음부터는 그러시면 안되어요.’
학벌 콤플렉스와 사회적 열등감이 심한 아버지의 분노에 이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을 일으켰다. 걸레로 오줌을 닦고 있는 모친의 등을 85kg의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내리쳤다. 온 집 안에 비명이 가득하다. 사람의 등 뼈가 부셔졌다. 인간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났다. 치매걸린 할머니. 등이 부셔진 엄마. 폭압적인 아빠. 우는 나와 누나.
할머니는 몇개월 뒤 돌아가셨다.
사례 2.
2021년 3월의 일이었다. 입대까지 2개월 남았다. 날이 따뜻하여 헬스를 다시 시작했다. 아버지가 또 술 마시고 와서 집에서 행패를 부린다. 나는 속으로 되뇌인다.
‘아 저 시발 새끼 또 지랄이네.’
나가서 아빠한테 지랄한다. 아빠보다 이제 내가 더 힘이 세다. 아빠가 이내 조용해진다. 근데, 몇분 뒤에 또 행패를 부린다. 흥분한 나는 아빠에게 겁을 주려고 나무로 만들어진 내 방문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방문에 금이 갔다. 아빠가 조용해졌다. 손이 이상하다. 병원에 갔다. 의사가 손이 부셔졌다고 하더라.
통뼈이고, 육체적 회복탄력성이 월등한 나는 입대하기 3일 전에 파멸된 나의 손이 원상복구되었다. 손이 부러지면 좀 많이 아프더라. 마음만큼은 아니지만.
보통, 폭력은 다른 폭력으로 이행된다. 내 아버지가 정말 나쁜 사람일까? 아버지뿐만 아니라 큰아버지들도 술주정이 심하다. 무엇을 보고 배운 것일까? 할아버지다. 강원도 평창 종중 100명을 거느려야 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과묵했던 할아버지. 술만 마시면 모든 집안을 풍비박산 내었던 184의 할아버지. 죄를 죄를 낳는다. 죄의 순환고리.
법률 에세이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변모한다. 범죄 피해자들이 범죄 가해자들이 되어버린다. 폭력과 폭압의 이행성.
내 안에는 엄청난 폭력이 있다. 강압과 폭력, 척결. 다 때려 부쉬고 싶고, 맘에 안들면 죽여버리고 싶다. 특히, 맘에 안드는 남자애들 몇명. 이게 내 마음이다. 근데, 점점 온유해질 것을 믿는다. 나는 너무 거칠고, 폭압적이고, 강압적이고, 날카롭지만, 누구보다 선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드럽고, 밝고, 다정한 방향으로 이끄시겠지. 악한 나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시겠지. 암, 그렇고 말고.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아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소년이 온다, 한강 저, p.213)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쳐나니” (로마서 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