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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승부사(勝附士)

by 바람

난 승부욕이 굉장히 강하다. 누가 나를 자극하면 그 사람을 반드시 뛰어넘지 않고는 안된다. 고약한 성깔이다. 아마 정신역학적으로 가부장적 아버지의 폭력과 업악에 대한 반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운동 중에 축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할 시간도 없고, 사람들한테 연락 돌려서 준비하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성고등학교와 교육사령부 훈련단에서 했던 축구들은 잊을 수 없다.


군대에서 벌크업을 한 뒤로는 몸 싸움에서 이제 잘 밀리지 않는다. 180에 70kg 중반인데다가, 코어 힘도 강하다. 백스쿼트는 80kg는 거뜬히 들고, 좀만 운동하면 120kg도 들 수 있다. 사실, 유전의 소인이 크다. 어머니가 중학교 때까지 현역 배구선수였고, 초등학교 학부모 계주에서도 2바퀴를 역전해서 뛰던 초스피드의 엄마를 잊지 못한다.


축구에서는 보통 오른쪽 윙포워드만 맡았다. 왼쪽 윙포워드는 감아차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나는 전문적으로 축구 강습을 받은 적이 없고, 절대적인 경기 경험 노출 기회가 많지 않아서 시야(insight)가 넓지 못하다. 단지 빠른 달리기와 순간적인 팬텀 드리블, 바디 페인팅으로 왼쪽 풀백을 제낀 다음에 컷백을 하거나 내가 직접 슈팅을 때려서 마무리하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몇 가지 적는다.


기억 1.

고1때의 일이었다. 같은 반인 무성이가 드넓은 축구 구장 반대편에서 나를 보고 크로스를 올려 주었다. (무성이는 축구를 정말 잘한다. 시야도 굉장히 넓다.) 보통은 무성이가 떠먹여주면 난 많이 놓치곤 했는데, 그날 내 킥에 크로스가 정면으로 타게팅되었다. 골(goal). 초대형 중거리포는 쏘아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쾌감은 성(性)을 통해서 느끼는 오르가즘보다 훨씬 크다.


기억 2.

고 3때의 일이었다. 그날 나는 2골을 넣었는데, 컨디션이 유독 좋았다. 같은 반인 세진이가 올려준 크로스를 두 번이나 중거리포로 만들었다. 내 축구화에 공의 중심이 정면으로 맞추어졌을 때의 쾌감. 골대가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 아이들의 환호 소리. 아 이맛이다.


난 솔직히 사내 아이면 축구는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축구를 통해서 남자들끼리의 대인관계 능력과 팀 워크 능력, 의사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남자 사회에서 갈등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갈등을 대처하고, 해결하는지도 배울 수 있다. 몸이 건강해지기도 하고.


요즘은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안보지만, 내 영웅(hero)이자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벨기에 대표 케빈 데브라이너다. 압도적인 중원 장악력, 창의적인 키 패스, 날카로운 하프 스페이스 침투, 세련된 볼 컨트롤과 온유한 성품까지.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살다보면 승부를 띄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그냥 들이박아야 한다. 앞 뒤 재다보면 기회 다 놓친다. 25년 축구 인생에서 배운 것을 이 지면에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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