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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투박(偸薄)

by 바람

나랑 관계 맺은 사람들은 내가 섬세하고, 소심하고, 꼼꼼하며,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투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난 투박(偸薄)하고, 많이 덜렁거린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 아파트 유리창을 축구공으로 다 부셔뜨려서 아줌마들한테 많이 혼났다. 비올 때는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 위에 올라탄 뒤에 옆 자동차로 점프하면서 놀았다가, 아저씨한테 뒤지게 혼난 적도 많다. 아파트에서 지나가는 행인들한테 물총 쏘고 튄적도 많고, 우유 급식 먹다가 지나가는 차에 던진적도 많다. 벨튀는 뭐 기본이고. 천방지축 개구쟁이.


청소년기와 성인이 되고서도 마찬가지다.


토익도 신청 해놓고, 드르렁 드르렁 늦잠 자다가 놓친적이 너무 많다. 수능 때는 제2외국어 보다가 보기 싫어서, 중간에 나왔다. 수능 국어 풀 때도 그냥 '아님말고' 마인드로 다 풀었다. 축구하다가 나한테 자꾸 더티하게 플레이 하길래 오른쪽 다리 피부가 다 나갈 정도로 하드태클 건 다음에 싸운 적도 있다. 아직도 몸에 흉터가 있다. 나보다 형들이나 누나들하고도 맘 먹으려고 한다. 싸가지가 바가지다. 운전하다가 시동 꺼트린 적도 많다. 다 안하다는 공군 훈련단 조교 반골기질로 바로 지원했었다. 중도휴학이랑 학사경도 맞았어도 별 타격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이성에게 3번 고백했는데, 상대랑 래포(rapport)도 쌓기 전에 그냥 했다. 심지어 남친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평안보다는 혈기가 앞선다. 후폭풍이 항상 커서 큰일이다.


이전에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를 본 적이 있다. 깡패, 건달 황정민은 진짜 무식 그 자체다. 그냥 들이박는다. 깽판치고 다닌다. 앞 뒤 안잰다. 솔직히, 맘에 들었다. 결국, 한혜진과는 슬플 결말이지만, 투박한 그의 사랑이 마음이 갔다.


피는 못속인다고 했던가. 삼촌이 조폭이고, 할아버지가 참전 용사고, 아빠가 백골부대 출신이다. 좋게 말하면 터프(tough). 나쁘게 말하면 무식 그 자체.


모르겠다 뭐가 맞는지.


그냥 생긴대로 살련다.


갈등이나 중요한 선택이 있을 때마다 나쁜 마음이지만, 이런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


'아, 시발. 죽기야 하겠어. 그냥 들이박는다 시부럴 ㅋㅋ.'


나도 나이가 들면, 이 혈기가 죽겠지. 지금 혈기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 응응.

오늘도 이렇게 뻘글을 주절주절 쓴다. 관심과 사랑으로 읽어준 그대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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