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는 전과자(前科者)다.
"잘못했어요. 아기가 고기를 못먹어서 그랬어요. 용서해 주세요."
유치원 때인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랑 둘이 마트에 갔다가, 어떤 아저씨가 엄마를 붙잡아 갔고, 경찰서로 데려갔다. 엄마가 사라진 사이 혼자 남아있는 내가 측은했는지 아저씨는 나에게 오렌지 쥬스를 자판기에서 뽑아서 사주셨다.
2019년 01월 01일. 여김없이 집안이 난리다. 그날은 유독 아버지의 술주정이 도를 넘어섰다. 나 고3되는 해인데. 아빠는 왜. 아빠를 업어치기로 제압하였고, 집이 조용해졌다. 보통 이렇게 무력으로 제압하면 조용해지는데, 그날은 더 흥분해서 남은 우리 가족 3명을 죽이려고 한다. 음. 경찰을 불러야겠다. 112로 경찰을 불렀다. 한국의 치안 시스템은 굉장히 훌룡하다. 공권력과 권총을 본 아버지는 겁에 잔뜩 먹어 술에서 깼고, 이내 집에서 자숙하는 듯 하였다. 그날은 집에서 있기가 어려워, 엄마랑 나, 누나랑 셋이서 운영하는 치킨집으로 피신했다.
사실 엄마도 워낙 강골이여서 별 타격은 없었지만,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의 오렌지 쥬스 기억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엄마가 사연을 말해주었다. 아빠가 농수산물에서 돈을 버는데, 임금이 너무 적다. 빚도 너무 많다. 누나와 나는 아이인데, 고기를 못먹은지 오래다. 엄마는 손이 빨라서 해서는 안되는 짓을 했다. 고기를 마트에서 몰래 훔친 것이다. 안하던 짓을 하면 사람은 티가 잘난다. 금세 보안요원에게 붙잡혔고, 생활형 범죄로 '절도죄' 전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연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3시 즈음에 어차피 오늘은 자긴 글렀다 싶어서 자는 엄마와 누나를 가게에 두고, 독서실에 갔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아침이 되어 배가 고파 집으로 갔다. 집에 가는 길에 진욱이를 만났다. 진욱이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진욱이가 반갑게 인사한다.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사실 많이 비참했다.
아빠도 전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귀가 얇고, 유약한 아빠는 100억대 사업을 하던 둘째 큰아버지의 불법사채업 바지사장을 하였다. 내가 8살 때 갑자기 30평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빠가 그랜져를 몰기 시작한다. 아빠가 대학원에 다니고, 정장을 입고 다닌다. 아빠가 달라졌다. 돈이 무섭다. 결국 15살에 불법사채업이 망했고, 16살에는 바퀴벌레랑 들쥐가 나오는 재개발 건축 빌라로 이사했다. 이때도 큰 타격은 없었지만, 동네 아줌마들의 수근거림과 아이들의 시선은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중학교 때 드라마 '시그널'을 보고 학비가 무료인 경찰대학에 가고 싶었다. 부모에게 말했더니 자신들의 전과 때문에 걱정된다고 하였다. 비참했다.
18살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근데, 아빠랑 엄마가 대낮인데 집에 있다. 가게는 보통 오후에 여니까 엄마는 있는게 당연하지만, 치즈 유통업 배달기사인 아빠는 왜 있는거지. 아빠가 해고되었다고 한다. 아빠가 측은해 보였다. 이후 투잡을 치킨 장사 원툴로 대체하였고, 현재는 집에 부채가 0이다.
연세대학교에 붙고 얼마뒤 재개발 그 좁은 방에서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용규야, 너무 미안하다. 너같은 애가 왜 우리 사이에서 태어났는지 미안하다. 서울에 돈 있고, 교육 받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면 더 잘되었을텐데, 너무 미안하다."
"응, 엄마. 괜찮아 ㅋㅋ."
가난은 개인의 탓도 있지만, 사회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특히, 한국같이 노동구조의 유연성과 학벌 프리미엄이 심하디 작용하는 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클 수 밖에 없다.
"머리는 누구보다 차갑게, 가슴은 누구보다 뜨겁게."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자소서 쓰면서 읽었던 경제학의 아버지 알프레드 마샬의 가르침은 내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가난이라는 사회적 질병이 치유되기를 오늘 밤도 기도하고, 고뇌하고,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