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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sillence)

칼럼

by 바람

대형 공개 톡방, 대면 커뮤니티이든, 개인 모바일 메신저나 카카오톡을 주고 받을 때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침묵이다. 어떤 이들은 개인적으로 응원해주고, 내가 무안하지 않게 reacting을 해주지만, 절대 다수가 침묵한다. 메신져을 읽지 않거나, 읽어도 답장을 하지 않는다. 안읽씹 하면서 인스타 스토리는 다 올린다.


이전에 박주영 판사가 ‘법정의 얼굴들’에서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제일 나쁜 짓은 혼잣말 하게 놔두는 것이다.”


동감(同感)한다. 무언가를 공유한다. 무언가 담론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내가 권력이나 인기를 얻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내 행동(acting)으로 누군가 이 병든 사회에서 자극을 받아, 내가 하나의 도화선이 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침묵한다. 개인 관계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답장을 하지 않는다.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UN 사무총장이나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존귀한 한 사람, 개인이 혼잣말하게 납두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명백한 죄(sin)이다.


이전에 최미호 교수님이 ‘미시경제학’ 수업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법입니다. 원래.”


진리(truth)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다 덮고도, 차고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나 또한 혐오와 살인충동, 폭력과 폭압의 방향에서 사랑과 자유, 평화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게 만들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 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3장 20절)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져주셨다. 그러니, 나도 항상 사람들에게 져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 혼잣말을 단체 카톡방, 공개 커뮤니티, 대면 공동체에서 중얼거린다. 그래도 괜찮다. 최소한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말을 다 들어주시기 때문에 괜찮다. 모든 인류가 내 말을 무시해도, 내 진심(眞心)과 진의(眞意)가 진리(truth)와 빛(light)의 방향이라면 난 혼잣말을 평생해도 별로 상관 없다. 오늘도 난 중얼거린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중얼중얼) 오직 사랑을 통해서, (중얼중얼) 그리고 사랑 안에서 (중얼중얼) 실현된다. (중얼중얼)”


“(중략)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 5. 31.”

(윤동주, 십자가 中 )


p.s. 칼럼의 메인 이미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 1634, Rembrandt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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