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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05. 2023

드라마 사전제작은 만병통치약?

2016/06/22 쓴 글.

사전 제작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드라마 제작 관련자들 가운데  사전 제작을 환영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쪽대본'이란 말로 상징적으로 표현되던 급박한 드라마 제작 상황을 떠올려 보면 사전 제작은 드라마 제작관계자 모두의 염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 앞에, 사전제작은 가고 싶지만 도착할 수 없는 신기루 같은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전 제작이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바로 중국의 사전 심의 기간을 맞추어야만 드라마의 중국 방송, 수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먼저 방송하면 순식간에 불법 복제물이 중국의 웹사이트에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전 심의를 받고 중국과 동시에 방송해야 합니다. 중국 당국의 드라마 심의를 받으려면 1년 전에 기획안을 사전 심의 후보작에 올려야 합니다. 6개월 전에 대본 심의를 받고 3개월 전에 저작물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 조건을 맞추어야 중국 방송에 판매, 또는 사전 투자를 유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KBS의 '태양의 후예'가 대성공을 거두자 사전 제작의 열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 제작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전 제작을 한다고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8년 방송한 <사랑해>, 2009년 <탐나는 도다>,  2010년 <로드 넘버원> 등 지금까지 사전 제작 드라마가 편성되었을 때 모두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애초에 드라마 대본의 경쟁력이 아쉬워서 편성이 미뤄졌는데 제작사가 무리해서 제작을 시작한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전제작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한국 드라마는 방송이 나간 직후, 시청자의 반응을 점검하면서 드라마에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수정하는 순발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한국 드라마의 장점을 발휘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둘째,  제작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완성도를 확보하고 노동환경이 좋아지겠지만, 그것은 촬영 일수의 초과와 촬영 시간의 지연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제작비를 과다 지출할 수 있습니다. 


셋째, 배우나 연출의 대본 수정에 대한 요구가 과해져 작품이 산으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제작 일정이 타이트한 것은 작가와 연출에게 그만큼 권력이 생긴다는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 제작의 경우 제삼자가 작가의 대본을 너무 흔들어 작품의 톤과 매너가 흔들리기 십상입니다. 


넷째, 방송 편성의 불확실성 때문에 국내 간접광고나 협찬 유치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사전 제작의 장점은 위의 열거한 문제점보다 훨씬 많습니다. 배우와 스태프의 컨디션이 좋고, 대본의 품질 관리가 가능해지며, 후반 작업에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는 것은 사전제작의 장정입니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사전 제작의 문화가 정착되어야지 중국 당국의 심의를 위해 무조건 드라마를 사전 제작한다는 것은 제사보다 잿밥에 신경 쓰는 일과 같습니다. 


저는 사전 제작보다 '대본의 사전 집필'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본이 미리 나와 있으면, 우리 스태프와 연기자는 같은 시간에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을 제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중국 심의 때문이 아니라, 우리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 대본 사전 집필제도가 가장 빨리 정착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시청자가 좋아해서 국외 시청자들도 우리 드라마를 좋아한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2023년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당시보다는 훨씬 사전제작이 일반화되었다. 당시에는 중국의 심의를 의식해서 사전제작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해외 OTT의 제작 문화에 맞추느라 사전제작이 필수적인 과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당시에 지적한 사전제작의 장단점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아직까지 대본의 사전집필이 정착되지 않은 것도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제작사나 작가 모두, 대본은 미리 다 쓰기 위한 투자를 아까워하기 때문이다. 돈 안 되는 일을 끝까지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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