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PD Jun 19. 2023

<레슬러>

2009-03-25

불편하다.

한 사람이 과거의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늙어가며 홀로 남는 과정을 바라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미키 루크가 연기한 '랜디 더 램 로빈슨'이란 퇴물 레슬러의 모습은 '인간은 모두 늙어 죽는다'라는 불편한 사실을 강요한다. 최후의 순간 스트리퍼 트레이시가 랜디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는 초라한 현실 속에서 화려한  비극을 택한다. 영화 [레슬러]는 이렇게 관객에게 힘든 시간을 강요한다.


이 영화는 <챔프>나 <록키>처럼 더욱 신파로 흘러가며 관객의 눈물을 짜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와 감독은 다른 선택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찍듯 랜디의 삶에 냉정하게 접근했다. 링 위의 괴물들이 링 밖에서는 양순해지는 양면성이 이 영화를 상징한다. 화려했던 과거와 초라한 현실을 대조하고, 레슬러의 삶과 식료품 가게 점원의 삶이 병행한다. 스트리퍼로서의 음란함과 엄마로서의 정숙함이 대조된다. 이렇게 모든 캐릭터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일부러 신 맛과 쓴 맛을 영화에 한꺼번에 집어넣은 것 같다. 삶은 한 가지 맛은 아니라는 것처럼.


미키 루크는 그의 실제의 삶이 영화의 캐릭터와 중첩되며 오래 기억에 남을 연기를 보여주었다. 알코올과 복싱으로 망가진 미키의 전성기처럼 쇠락한 레슬러 '랜디'의 모습은, 미키 루크외에 다른 연기자의 모습을 생각해 내기 어렵다.  '램 슬램'이라는 전매특허의 기술로 링 꼭대기에서 바닥을 향해 몸을 내던지며 랜디의 기술은 묘하게 상징적이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랜디는 이 세상의 잘난 것들에게 경고한다.


네가 언제까지 젊을 줄 아느냐, 네가 언제까지 힘 있을 줄 아느냐, 네가 언제까지 즐거울 줄 아느냐. 네가 늙고 쇠락해졌을 때 네 옆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지 두고 보자. 그날을 대비해 오늘 더 잘하고 다녀라.



작가의 이전글 지연, 학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