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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9. 2023

<The Reader>

2009-03-30

영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스티븐 달드리 Stephen D. Daldry 감독이 탁월했음은 관객에게 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장면과 샷은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영화는 화려한 색채도 감독의 기교도 편집의 현란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관객 속으로 파고들던 음악이 있었지만 그 어느 멜로디도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캐릭터, 이야기, 연출이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 영화 자체가 완성된 예술품으로 올 곧이 서있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다 본 후 다시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반추하는 여운은 이렇게 간추리고 정돈한 감독의 선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열다섯 살 소년 미카엘은 귀갓길에 성홍열 때문에 구토를 하게 됩니다. 마침 귀가하던 전차의 집표원 한나는 힘들어하는 미카엘을 도와줍니다. 이를 계기로 열다섯 살의 소년은 한 성숙한 여인과 정사를 나누게 되고 둘 만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시작합니다. 한 여름 동안 태양처럼 뜨겁게 달구어졌던 사랑은 어느 날 한나가 바람같이 사라지면서 끝납니다. 첫사랑에서 버림받은 상실감으로 소년 미카엘은 어딘가 결여된 청년으로 성장해 법대생이 됩니다. 미카엘은 2차 대전의 전범자를 단죄하는 법정에서 8년 만에 피고가 돼있는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영화는 그 순간 에로티시즘에서 벗어나 더욱 큰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행동과 결과, 한다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왜 한나는 불타오르는 교회 속의 유태인을 내버려 두었는지, 왜 그녀는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시인했는지, 왜 그녀는 평생 감옥의 삶을 택하였는지, 왜 미카엘은 그녀의 무죄를 입증할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했는지. 결국, 왜 '우리는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대답을 궁리하게 만듭니다. 이 질문은 비단 2차 대전을 겪은 독일인뿐 아니라, 정의와 평등, 인류애를 외치면서도 이와 모순된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똑같이 해당됩니다. 주인공 미카엘이 겪는 '행하지 않은 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을 관객은 없기에 이 영화의 여운은 더 큰 모양입니다.


원작의 유명세도 있지만 이 영화가 처음 관객을 유혹하는 것은 배우와 제작진의 화려함입니다. '빌리 엘리어트'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연출했고,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시드니 폴락과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안쏘니 밍겔라 감독의 유작입니다. 여기 할리우드의 주류에 속해 있으면서도 항상 비주류적인 영화를 선택해 온 두 배우가 가세했습니다. 랄프 파인스와 케이트 윈슬렛이 바로 두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으로 케이트 윈슬렛은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원작 소설의 감흥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기에 각본 데이비드 헤어의 솜씨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역시 저는 감독에게 더 큰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연출은 샷과 콘티뉴어티가 아니라 극의 리듬과 박자에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감독의 시간차 공격에 관객은 리듬을 뺏기고 그의 장단에 휘말리게 됩니다. 단순한 미학 속에서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를 던져 줍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훌륭한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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