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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9. 2023

오디션 볼 때 연출을 무엇을 보는가

2009-03-30

드라마 할 때마다 저는 신인 배우 오디션을 합니다. 새로운 배우를 드라마 업계에 소개해서 배우의 진용을 넓혀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습니다. 또 신인 배우를 소개하고픈 여러 관계자들의 절실함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연출자로서도 가장 큰 보람은 제가 데뷔시킨 배우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세월이 쌓인 만큼 그렇게 세상에 내보낸 배우가 몇 있습니다. 그들이 잘 나서 잘된 것이겠지만,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제 안목이 인정받은 기분이 듭니다.

연출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기준이 다르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눈여겨봅니다.


첫째 연기력입니다. 제작 현장은 연기자를 고용하는 곳이지 연기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연출자가 연기를 가르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드라마 연출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역할이 비슷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연주자를 선발하고 연주곡에 대해 해석하고 단원을 모아서 연습을 주도합니다. 그러나 개개의 연주자에게 피아노 치는 법과 바이올린 켜는 법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발성 훈련이 되어 있고 정확한 발음을 한다면 지원자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봅니다. 연예 명문이라고 불리는 몇 학교의 졸업생은 상당히 연기 훈련이 잘되어 있어서 눈여겨봅니다. 연극 무대 등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은 지원자도 주목의 대상입니다. 지원자가 사천여 명에 이르지만 실제로 준비되어 있는 연기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배우로서 캐릭터에 금방 몰입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두 번째로 저는 배우가 가진 에너지를 보려고 합니다. 배우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고 '카리스마'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배우가 무대에 섰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게 하는 힘을 저는 배우의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 큰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에너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힘 좋은 자동차가 시동을 걸고 낮은 소리로 부르릉거릴 때 느껴지는 에너지라고 할까요. 조용하면서도 폭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느껴진다면 당연히 그 지원자에게 시선이 갑니다. 아무래도 발성이 잘 되어 있고 연기할 때 몸의 움직임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 이런 에너지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외모입니다. 저는 조연을 선발하기보다는 미랴에 주인공을 선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연기가 아쉽지만, 외모가 좋은 지원자'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외모가 처지는 지원자'보다 더욱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외모의 호감도에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외모 중에서도 우선 눈빛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맑고 밝은 눈 빛은 사람의 인상을 좌우합니다. 가능한 작고 균형 잡힌 골격의 얼굴을 선호합니다. TV 카메라 렌즈가 인물을 조금씩 크게 왜곡시키는 특성을 고려해서 그렇습니다. 너무 적거나 큰 키는 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의 범위를 제한합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평균적인 신장을 가진 배우를 찾습니다. 이 평균적인 신장이 보통 사람의 키보다는 약간 큰 경우가 많습니다. 상반신, 하반신, 얼굴 등 신체가 적정하게 비례를 이루고 있는지도 슬쩍 체크합니다. 개성이 강한 외모를 가진 지원자는 조연으로 풀릴 가능성이 많은데 최종적으로는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렇게 오디션에 선발된다고 해서 곧 영광의 길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은 1% 정도의 소수에 해당합니다. 신인 배우가 한 드라마에 캐스팅된 것은 직업인으로서 배우의  첫 번째 관문을 지난 것에 불과합니다. 한 번의 오디션은 그 후에 수 십 번, 수 백번의 오디션으로 이어집니다. 오디션에서는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붙는 게 신기한 일이죠. 그래서 좌절을 밥 먹듯이 당연히 여기고, 오디션 장에 나아가셔야 합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습니다.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입니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그 능력이 알려지다는 뜻입니다. 꾸준히 준비한 인재는 언젠가 세상에 알려질 것입니다.  배우에게 열리는 기회의 문은 여러 시기, 다양한 형태로 그들의 인생에 나타날 것입니다. 무대가 좋고 배우의 삶이 좋은 분들은 꾸준히 문을 두드리십시오.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날이 오겠죠. 몰라줘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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