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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9. 2023

<작전>

2009-02-12

최근 영화계가 흉흉합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영향을 주어 봇물같이 터지던 영화제작의 물길이 말라 붙고 있습니다. 한 해 150편에 달하던 한국 영화 개봉 편 수가 올해에는 이십여 개로 줄어든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 침체는 영화계로서는 기회입니다. 적은 규모의 지출로 즐기는 여흥으로서 대중에게 영화는 여전히 좋은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작전]은 개봉 시기를 잘 잡은 것 같습니다. 볼만한 영화가 없는 시기에 시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주식시장이 무너지고 펀드가 반토막난 시기에 증권가와 주가 조작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주식의 '주'자만 들어도 진저리 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흥행을 일으킬 수 있는 소재인지 의심이 갑니다. 극장에 들어가는 두 시간 만이라도 어두운 현실을 잊고 싶은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삶의 디테일과 현실보다는 판타지로 쉬고 싶은 것이 요즈음입니다.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강한 설정과 스토리텔링이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게 요즈음입니다. 영화 시장에서 선 듯 손이 가기 힘든 티켓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획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더욱 신중하게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설정과 전개가 아쉽습니다. 완벽한 주가조작 선수들이 모여 있습니다. 전직 조폭에서 증권 조작 리더로 변신한 황종구(박희순)의 캐릭터가 황당하긴 하지만 천재 개미투자자 강현수(박용하 분), 미모와 천재적인 경제감각을 지닌 자산관리사 유서연(김민정 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악질 증권중개인 조민형(김무열 분) 등 부분별로 짱짱한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 캐릭터들이 극 후반에 가서 한 번에 무너지고 그들이 혐오해 마지않던 개미들 마냥 당황합니다. 결국 극의 종지부는 마치 고대 연극의 마무리를 한방에 처리해 주건 기계의 신처럼 초중반에는 비중이 없던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조작 설거지꾼, 마산펀드 등에 의해 처리됩니다. 좋은 캐릭터들이 바보로 변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정해진 수순으로 전개됩니다. 지독히 교훈적인 내용이어서 이야기의 진행이 예상됩니다. 제작진이 어려운 증권 관련 용어와 개념을 강의하는데 들인 정력만큼 이야기의 변주를 위해 애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통정 거래'에 대한 비유와 상황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결국 박용하가 분한 강현수의 매력마저 빛을 잃습니다.


현란한 듯 보이는 연출과 편집이지만 너무 규칙적인 현란함이어서 어느 순간 지루해집니다. 관객의 호흡을 리드하고 충격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전체적인 리듬이 규칙적인 메트로놈의 호흡처럼 느껴집니다. 색조도 이야기의 톤에는 어울리지 않게 뽑힌 듯합니다. 더 차갑고 날카로왔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박희순과 김무열의 연기는 광채를 발합니다. 두 배우가 앞으로도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도록 [작전]이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관객의 영화 시장에서 이런 기획에 선뜻 손을 내밀어 골라든지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새로운 소재를 파고든 제작진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주식은 타이밍이라는데 이 영화는 결국 타이밍이 좋지 않습니다.



경기가 순환하는지, 2009년에 쓴 글의 인트로가 요즘의 현실에 꽤 부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만 영화 티켓 값이 올라서 서민들의 유일한 오락 거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군요. <닥터 차정숙>과 같은 쉽고 편한 드라마가 유행하는 걸 보면, 드라마나 영화 기획의 면에서도 2009년의 트렌드는 참고할 만합니다.(20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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