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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9. 2023

추기경께 드린 질문

2009-02-18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신 후 쓴 글입니다.


저는 수년 전에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드린 당돌한 질문과 추기경님의 대답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추기경님이 거처하시는 개인 공간에 연락을 드리고 찾아가 정해진 업무를 끝내고 잠시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제 가슴에 묻혀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것은 추기경께서 하느님이 계신 증거나 기적을 체험하신 일이 있으시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성직가 가운데는 자주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체험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전해 듣기로 '방언의 능력'이나 '치유의 능력' 또는 '퇴마의 능력'을 지니신 분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직접 연결돼 있음을 실감하시는 분들입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오랜 수장이셨던 추기경께서는 반드시 특별한 은혜를 받으셨을 거란 확신에서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미소를 지으면서 해주신 추기경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실 괴로워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 같은 이(교회의 수장)도  그런 체험을 못했다는 것이, 저와 같은 처지의 많은 신자들에게 위안이 되질 않겠습니까?"


추기경께서는 이제 하느님 옆으로 가셨을 겁니다. 생전에 못한 체험 대신 그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가 믿던 신을 만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살아온 한국 사회는 무력이 지배했고 목소리 큰 사람이 많은 세상이었습니다. 작은 체구로 내신 적은 목소리로, 남들이 못 낸 말씀을 하셨습니다. 큰 일을 한 일꾼과의 만남을 신께서도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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