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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21. 2023

[그들이 사는 세상]이 시청률이 낮았던 이유

2008-11-25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낮은 것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인 현 빈과 송 혜교가 드라마를 이끌고 여기에 배 종옥, 김 갑수, 김 창완, 윤 여정 등 최고의 연기파 중진들이 허리를 맡고 있습니다. 엄 기준, 최 다니엘 등 신진들이 저마다 개성적인 연기를 펼쳐 드라마의 수비진을 두텁게 펼치고 있습니다. 감칠맛 나는 대사에 신선한 캐릭터라니, 극본이 노희경 작가입니다. 그동안의 드라마에서 보여준 느릿한 스타일이 재미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확 칼라를 바꾼 '풀 하우스'의 표민수 감독이 선장입니다. 도대체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포석인데 아직도 꿋꿋이 5%대의 단자리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재미있는 드라마를 몇 주째 챙겨보면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시청자들을 가슴 졸이게 할 주인공들의 목표가 분명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정 지오(현 빈)는 잘 나가는 PD이고, 이미 정 지오와 주 준영(송 혜교)은 잘 돼 가는 연인입니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드라마의 결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도 잘 이루어지고 일도 성공적입니다. 이제 연인들의 소소한 티격태격을 구경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의 진폭이 너무 미미합니다.


둘째, [그들이 사는 세상]의 캐릭터는 일반 드라마와는 다릅니다. 자신의 욕망을 대사로 표출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캐릭터들입니다. 시트콤에서처럼 식욕, 성욕 등의 말초적인 욕구는 아니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며 인정받기 바라며 성공을 추구하는 욕구를 주저하지 않고 외재(外在)화 시킵니다. 이렇게 욕망을 솔직하고 표현하는 캐릭터는 쉽게 시청자의 가슴에 안착하기 쉽지 않습니다. 생경하기 때문입니다. 시트콤이 정착하기가 쉽지 않듯이 이 드라마가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셋째, 드라마에 사건이 부족합니다. 조연을 비롯한 주변 인물에게는 그래도 사건이 일어나는데 주인공들에게는 사건이 별로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났다 치고 그 결과에 리액션을 보이는 것이 주인공들의 주된 행동입니다. 주인공들이 사건을 저지르고 수습하기보다는 조연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반응하고 수습하는 대화가 많습니다. 객이 난장을 치고 주인이 해설을 합니다. 토크쇼 같은 드라마가 된 것입니다.


넷째, 드라마의 분위기가 너무 쿨 합니다. 어제 방송에서 주준영이 '나 정지오랑 사귀어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처럼 드라마가 쿨합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 너무 쿨한 드라마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쿨한 드라마를 극도로 지지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그런 드라마에 무심한 대부분의 시청자들로 나뉩니다. 쿨한 드라마는 마니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만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얻기는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열정적인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다섯째, 드라마가 너무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선남선녀들이 드라마 연출자들이니 도무지 리얼리티가 생기질 않습니다. 송 혜교가 분한 주 준영을 거부하는 준규라는 캐릭터라든지, 주 준영 같은 아름다운 여성을 '쉽다고' 치부하니 드라마에 공감대가 형성되질 않습니다.  네, 이건 저의 개인적인 편견이 강하게 작동한 의견입니다.


다섯 번째 주장은 거의 농담에 가까운 것이지만 나머지도 다 억지에 가까운 논리입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주인공의 목표가 분명히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습니다. 낯설기는 하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매력입니다. 사건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사람을 적셔주는 감동이 있습니다. 핫한 드라마에 진력이 난 우리에게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 같은 쿨함이 있습니다. 판타지 같은 드라마 공간이 설정되어 있기에 드라마 제작 종사자로서 저는 그 회사로 전근 가고 싶습니다. 


좋은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골에 계신 정지오의 부모님 같은 분들이 열심히 시청할 드라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니아나 비평가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지만 어느 순간 대중들과는 거리가 멀어져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만의 세상]이 방송되는 월, 화요일을 기다릴 것입니다. 제게는 이 드라마의 얘기가 '제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대한민국 5%의 그룹에 들어있는 게 흐뭇합니다. 남들이 모르는 보석을 알아보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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