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PD Jun 06. 2023

<변호인> 2014

2014/02/09

영화 [변호인]이 돌아가신 대통령의 이야기라고 쟁점이 되는 것이 유감입니다. 아직 우리가 정치적으로 뒤처져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우리 문화가 정치 문제로 좌지우지될 수 있는 절름발이 상태라는 것입니다. 제작진이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을 '노변호사'가 아닌 '송변호사'로 거리를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와 정치 사이에 간격을 두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정치적인 압력을 회피할 목적이었을 테지만요.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빨갱이로 몰아붙인 집단이 가진 강박증만큼 무서운 억압이 여전히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좌측에서 우측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송변호사를 노변호사로 일치시키며 심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강박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강박이 사라져 문화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삶에 관심이 있고, 정치는 고급문화처럼 품위 있고 창의적인 때가 온다면 그때는 [변호인]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가 나올 것이고,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큰 반향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정치적 논란을 걷어내고 봐도 [변호인]은 영화로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연출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이야기를 끌어내었고 연기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캐릭터는 알맞게 변화했고 성장했으며 이야기는 그렇게 달지도 쓰지도 않게 공감과 감동의 여운을 주며 끝냈습니다. 송강호가 보여준 연기는 최근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인 관행적인 것을 벗어나 힘과 에너지로 관객에게 파고드는 돌파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로서 훌륭했습니다. 


사족이지만, 정치 얘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80년대 중후반, 민주화 운동에는 실제로 북한과 연계된 세력이 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속의 악당들이  조작한 허구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그런 사실은 고려한다면 영화 [변호인]은 순수했던 민주화 세력에 대한 그리움이 이야기의 바닥에 깔린 힘이었습니다. 보이는 적이 분명한 만큼, 그들에게 대항한 민주화 세력도 선명했습니다. 피아의 구분이 힘들어진 요즘, 찾기 힘든 순수성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의 악당은 현실에서 존재했고 그 악당이 만든 조작된 꼭두각시가 생명을 얻게 된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하는 짓은 닮을 꼴인 세력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진짜와 꼭두각시가 같이 핏대를 올리는 난장판을 본 젊은 세대가, 정치에 희망을 잃고 진저리를 치지 않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죽은 대통령에게 우리가 가장 끌렸던 것은 그의 순수성이란 것을 다른 정치인은 왜 모르는지요. 



그때의 생각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2023/06/06)

작가의 이전글 슈가맨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