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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26. 2023

금연

2008-04-08

좋아하는 선배인 P형이 암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후덕하시고 멋진 예술인이었던 P형의 발병 소식에 발 밑이 꺼지는 황당함을 느낍니다. 쾌유를 빈다는 인사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대신 뒤돌아서며 담배 원망을 합니다.


암이란 병의 많은 이유가 유전적 요인에 있다고 합니다만, 흡연이 발병 요인의 하나임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입니다. P형은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그것이 그의 폐를 힘들게 한 거라고 원망합니다.


저는 담배를 고3 시절에 배웠습니다. 담배를 자유의 상징처럼 여겼기에 대학 시절 내내 줄곧 피웠습니다. 흡연의 습관은 방송국에 입사해서도 죽 이어졌는데 어느 힘든 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밤새고 운동도 못하고 식사도 불규칙적인데 도대체 내 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뭐냐?"


그래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것이 97년이고 2002년까지는 술자리에서만 흡연을 했습니다. 2002년부터는 그나마 끊었기에 이제 완전히 금연에 성공했습니다. 금연에 성공했다는 것도 대단한 성취감이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가족에게 떳떳하다는 겁니다.


아빠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흡연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흡연하면서 아이에게 '담배 피우지 마라'는 훈육은 모순일 수 있습니다. 담배 피우지 않는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담배는 좋지 않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담배 피우는 모습, 멋있지 않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만성화된 중독 상태를 이어가기 위해 계속 니코틴을 공급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스태프들에게 제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합니다. 아예 첫 스탭 회의에서 '내 옆에서는 담배 피우지 마라'라고 부탁합니다. 간접흡연으로 현장에서 피로감이 더 해지기 때문입니다. 꽁초를 버리면 벌금을 받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다음에는 담배 끊지 않으면 다시는 같이 일하지 않을 것이라 반 공갈을 합니다. 하루 두 갑 담배를 피워 5000원씩 지출을 하면 1년 180만 원입니다. 그 돈을 살살 모아 펀드에 가입하면 나중에 멋진 여행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금연의 요령이 있습니다. 첫째, 단번에 끊어야 합니다. 줄이는 것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주위에 소문을 내며 끊어야 합니다. '담배 피우다 걸리면 만 원줄께'와 같은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금연 의지를 굳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 신상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금연을 잠시 미뤄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금연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심심한 입을 대신 채워줄 대용품, 예를 들어 껌 같은 것을 준비해서 입을 달래야 합니다.


금연하면 일주일부터 약 3주간 금단현상이 나타납니다. 우울해지고 초조해집니다. 자다가 벌떡벌떡 불안해져 일어나는 것이 저의 금단현상 아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니 안정기가 찾아왔습니다.


담배 끊으세요.


그리고 P형의 쾌유를 빕니다.




P형은 이 글을 쓴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아직 금연 중입니다. 제 주변에는 아직 흡연하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여전히 스태프 회의 때 담배를 못 피우게 하고 있습니다. 담배 값은 만오천원이 넘어갑니다. 학력이 낮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담배를 더 찾으신다는 게 세상의 아이러니입니다.(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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