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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26. 2023

<김창완>

2008-04-13

PD라는 직업이 좋은 점은 멋진 사람을 업무를 핑계로 만날 수 있는 것이겠죠. 저는 산울림 음악의 광팬은 아닙니다만 그의 음악이 시대에 앞서나간 세련미가 있었고, 그 나름의 색깔로 고유한 정체성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음악에는 순수하고 착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마 김창완이란 사람의 인간미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어느 해 우연한 모임에서 선배의 옆자리에서 창완형과 대화를 나눠보고 살짝 반했더랍니다. 한국판 '어린 왕자'의 중년 버전이 있다면 김창완형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순수한 느낌을 발하셨습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 분위기 그대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멋진 창완형과 술 한잔 안 마신 게 신기할 정도이죠. 제가 무심한 놈입니다. 


야외 촬영장에서 김창완형과 나눈 대화입니다.


김창완 : 감독님, 내 역할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해야 돼?


용 PD: 형이 한 나쁜 짓 때문에 이 드라마가 시작되었으니 '악의 축' 아닐까요?


김창완: 음, 근데 우리 드라마 퓨전이야?


용 PD: 퓨전이라는 의미가 워낙 광범위하게 쓰여서 좀 혼란스러운데요. 퓨전이라는 의미가 사극의 탈을 쓰고 현대인들이 하는 짓들을 그렸다는 의미라면 저는 [일지매]는 퓨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왜 그런 질문을... 


김창완: 응, 너무 퓨전으로 그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감독은 정극처럼 그릴 작정인가 봐라고 전해줬어.


용 PD: 예. [일지매]는 조선의 한 시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탠 드라마여요. 예를 들어 [롬 ROME]이란 드라마는 시이저의 왕정에 반대한 브루터스의 반혁명 시도란 역사에 근거하지만, 그 이면에 시이저에게 버림받은 부르터스 엄마의 부추김을 넣어 드라마적인 재미를 살렸잖아요. 우리도 그런 역사의 빈구석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롬]은 퓨전이란 소리를 안 하던데...


김창완: 역사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탰다...


용 PD: 뭐랄까, 미술이나 음악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고 있으니 그런 면에서는 퓨전이죠. 우리 드라마 외국에서도 볼 지 모르니 좀 세련되게 보이고 싶고, 그런 의미에서 음악도 일부러 국악기는 자제하고 녹음하자고 의견을 냈죠. 글로벌 스탠더드에 접근한다고 말하면 좀 쑥스럽지만...


김창완: 근데 방송이 언제야? 자꾸 왔다 갔다 해서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는데 박력이 없잖아.


용 PD: 5월 28일 수요일부터예요. [온 에어] 후속으로... 인제 박력 있게 대답하세요. 


중년 어린 왕자 김창완 형은 그날 새벽 3시까지 저와 충북 화양계곡에서 촬영을 하셨습니다. '창완형!'하고 부르면 마치 소년처럼 '옛'하고 대답하는 늙은 어린 왕자는 다음날 아침 변함없이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졸린 듯한 목소리를 내보내셨습니다. 피곤하셔서 그런지 다른 날 보다 유독 음악이 많더군요. 창완형, 다음에 만날 때는 술 한잔 하십시다. 




제가 무심했네요. 창완형께 연락드린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사람일이라지만, 김창완형은 항상 그리운 분입니다.(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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