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PD Jul 16. 2023

지금은 심사 중

극본 공모 준비하는 작가에게 주는 조언

매년 방송사와 제작사에서 극본을 공모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극본 공모를 통해 방송사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 드라마 작가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작가의 데뷔 경로가 많이 다양해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극본공모는 성행하고 있습니다. 극본공모로 데뷔를 준비하는 예비 작가도 많이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TV드라마의 제작은 좋은 대본을 기획하고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일의 시작에는 작가가 필요합니다. 드라마 PD가 기획을 한다는 것은 아이디어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지, 결국 아이디어에 살과 뼈를 붙여 생명이 있는 형체로 만드는 것은 작가의 몫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극본 공모를 통해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것은 드라마 PD로서는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오랜 시간 극본공모 심사를 했습니다. 단막극 공모에서 미니시리즈 공모로 극본 공모의 추세가 바뀌는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SBS 드라마 기획팀장 시절에는 극본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가가 미니시리즈를 집필한 작가가 한 분도 없는 걸을 발견하고, 공모 체계와 작가 양성 체계를 바꾼 적도 있습니다. 오늘 극본공모를 준비하는 예비 작가분께 조금 힌트를 드리고자  합니다.


극본 공모는 상대 평가입니다. 어느 해, 우수 작이 많이 밀려들 때도 있고,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 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수작이 몰린 시기에 고배를 마신 작품이, 다음 해에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다른 방송사에서 합격하기도 합니다.  드라마의 소재나 기획이 시기적으로 유행을 타기도 합니다. 그해 히트 친 영화나 드라마의 아류가 몰려들기도 합니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며, 같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삽니다. 소재가 같고, 비슷한 기획이 많이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비슷한 기획에서 출발한 대본은 쉽게 비교하고 경쟁하게 됩니다. 기획의 차별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전에는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나  '소나기' 같은 소꿉친구와의 사랑과 재회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가 넘쳐 났습니다. 최근에는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가 나오는 드라마가 많습니다.  2부작이어서 기본기가 부족한 대본은 뒤로 가면서 금방 작가의 내공을 드러내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신인작가가 공통적으로 지닌 문제는 극 초반에 주인공이 해결할 쟁점을 부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5 씬이 지나가기 전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히 제시해야 합니다. 25 씬이 지나기 전에 주인공이 뭘 하고자 하는지 분명히 내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1회의 종반을 치닫도록 주인공의 목적이 무엇인지, 드라마의 쟁점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는다면, 시청자의 입장에서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구성에 관한 것입니다. 주인공의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이루는데 계속 장애가 생겨야 하고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 또한 심화되어야 합니다. 문제적 상황과 갈등이 점점 고조되어서 시청자로 하여금 '과연 주인공의 목적이 2부의 끝부분에서 쟁취될 수 있을까' 하며 가슴 졸이며 극을 쫓아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깝게 고배를 마신 대본들은 대부분 갈등의 크기나 양상이 비슷한 규모로 '병렬'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많은 공모작이 '무의식적인 표절'을 하는 부분도 보입니다. 이점은 드라마의 설정에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별 에피소드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있었던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카피한 예가 많습니다. 주인공이 처한 목표와 환경이 다르고 캐릭터가 다르다면 그 어느 에피소드에도 주인공의 반응형태가 기존의 작품과 비슷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데드라인을 맞추고 양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면 무의식적으로 창작이 아닌 표절을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창의적인 자세는 '아무 생각 없이 베끼지 않았나'하는 자기 검열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차라리 드라마의 설정은 차용을 해도 괜찮습니다. 대사나 상황 등 구체적인 표현 방식이 비슷하다면 표절로 판단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 집안의 자식이 사랑하는  설정은 가져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잠이 든  연인을 죽었다고 착각하고, 남아있는 연인이 독을 마신다면 이건 표절로 간주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전 EBS에서 EIDF(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제목은 [18Kg의 사랑; 39 Pounds of Love]인데 근육위축 증으로 한 손가락 밖에 쓰지 못하면서도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아미라는 청년의 삶을 다룬 것이었습니다. 극 초반에 서른네 살의 이스라엘 청년 아미는 가족 앞에서 선언을 합니다. 


    "미국에 가겠어요."


그가 미국에 가는 목적은, 자신이 6살까지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이 지금까지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브플롯이 들어옵니다. 자신을 2년 동안 헌신적으로 돌봐준 간호사(care taker) 크리스티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것, 그리고 자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며 자란 형과의 화해, 끝으로 할리 다비슨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주인공의 꿈이 날줄과 씨줄로 얽혀 듭니다. 손가락 하나 밖에 못 움직이는  주인공이 그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보게 만드는 감동과 재미가 함께하는 '드라마'였습니다. 가장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극적(劇的)"이라고 하더니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좋은 드라마 한 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드라마 작가가 앞으로도 많이 나타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이 그런 작가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끝으로, 모방이든 표절이든 일단 대본을 완성하셔야 합니다. 모방과 표절을 걷어내고 수정하면서 새로운 드라마가 나타납니다. 좋은 대본은 다 쓴 대본입니다. 집필 작업은 수정 작업라는 말도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캐스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