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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l 23. 2023

연극 <변> 2007

2007년 9월 9일에 쓴 글

직업이 연출이기에 다른 이의 작품을 보면 분석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무대는 어떠하고 연기는 어떠하고 음악은 어떻고 최종적으로 연출을 어떠한지 비평가의 관점에서 극을 봅니다. 그런 이런 삐딱한 시선은 관극을 하는 동안 작품이 재미가 없을수록 오래 계속됩니다. 극이 재밌으면 비평가로서의 역할은 어느새 까맣게 잊고 관객이 되어 극의 롤러코스터에 함께 올라탑니다. 저 같은 삐딱이조차 하늘로 들어 올리고 달리게 하고 몇 번 뒤집었다면, 그 작품은 참 재밌는 작품일 겁니다. 재미없는 작품은 비평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달콤한 수면의 시간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변]은 삐딱이의 시선을 가질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암전과 함께 들리는 기생과 아전들의 야한 농 짓은 관객의 오감을 곤두서게 하고 변학도의 부임을 알립니다. 불이 켜진 뒤에 발견한 배우는 모두 현대 의상을 입어 과거의 기생은 오늘의 룸살롱 아가씨로 변해 있습니다. 등산복 차림으로 부임한 변사또는  기생 점고부터 시작하는 원전에 충실한 전개를 보여 줍니다. 다만 그 점고가 오늘날의 신고식이란 화려한 퍼포먼스여서 관객의 배꼽을 빼놓습니다.


[변]은 두 가지 버전의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변라도' 버전이고 또 하나는 '변상도' 버전입니다. '변라도' 버전은 전라도 사투리로 극이 이뤄지고, '변상도' 사투리는 경상도 사투리로 채워진답니다.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란 말을 했다지만 내용이 같아도 전달하는 도구가 다르기에(!) 두 버전은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모양입니다. 저는 '변라도'버전을 보았는데 등장하는 배우들이 호화판입니다. 문성근, 최용민, 박광정, 박지아 등 영화와 TV에서 한다 하는 배우들이 몸을 풀었습니다. 그 배우들이 변학도와 그의 아전, 그리고 기생들로 분합니다. 그 배우들이 좌우의 관객에 둘러싸인 무대에서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며 시선을 붙잡습니다. 볼 것이 많아 한번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고전을 비트는 이야기가 유행이라는데 [변]도 이런 유행의 궤를 쫒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은 춘향전을 비틀었다기보다는 '변'학도와 아전 그리고 기생들의 시점과 감정에 집중한 극입니다. 쉽게 말해 춘향을 사랑해 '한번 하자'는 변사또의 해결되지 못한 욕정을 희극적으로 미화한 작품입니다. '국민을 사랑하기에 내가 집권해야 한다'는 진부한 구호처럼, 춘향을 향한 일방적인 욕정이 황지우의 시어로 표현됩니다. 문성근의 변사또는 그 진지함이 심오해 웃어야 할지 굳어야 할지 애매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 이제는 진지해졌기에 오히려 비참해 보이는 기생과 아전의 굳어 있기에 이 극의 상징과 조롱이 절정에 달했음을 느낍니다. 극의 막판에 '어사출두요' 대신 들린 군중의 함성 소리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유치했습니다만...


벗기지 못한 춘향이의 속곳처럼 야리야리한 음악이 절묘하기에 찾아보니 요즘 영화판에서 주가를 올리는 장영규의 솜씨입니다. 그 음악이 극에 등장하지 못한 춘향이의 미모와 정절을 짐작하게 합니다. 다차원 시대의 멀티 태스킹하는 관객을 사로잡는 이상우의 실험적인 연출도 대단하고 그 실험이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하게 하는 연륜에는 경탄할 뿐입니다. 단 하나 극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극장의 흡음시설의 미비로 주옥같은 대사들을 흘려들었음이 못내 아쉽습니다. 잘 들으면 아래와 같은 시로 시작합니다.


어쩜 내가 널 본 게, 내 불행인지 모르겠다.

독감 나가듯 한 사랑이 끝나면

몸서리나는 사랑 이젠 두 번 다시 않을 듯하다가도

어찌하여 좋은 여자는 또 나타나는지

뜻하지 않게 널 본 내 눈이여, 불행하여라


극단 차이무의 [변]은 오는 14일이면 끝난답니다. 어서 서두르세요. 참, 변상도 버전이 더 웃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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