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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l 25. 2023

<쩐의 전쟁> 촬영 후기

2007년 7월 23일에 쓴 글입니다.

세 달여 동안 촬영했던 [쩐의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후배 장태유 PD의 작품입니다. 제작 일정이 촉박하다고 하여 일주일에 이틀 정도 촬영을 돕기로 했습니다만, 회차가 지나면서 일이 커졌습니다. 1회에는 한 씬 정도를 촬영했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B팀의 촬영분량이 많이 늘었습니다.


[쩐의 전쟁]은 결과적으로 사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기획 초부터 '사채업자를 미화한 드라마'가 아니냐는 주위의 걱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계심이 오히려 드라마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시킨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는 SBS 고위층의 정책적인 판단의 덕이 컸습니다.  사채업계의 협찬을 거절하고, 그 차액만큼 제작비를 더 지급하는 용단을 내렸습니다. 사채업으로부터 협찬금을 받았다면 드라마의 내용은 사채업에 대해 호의적으로 나갔을 것이며, 사회적인 질타를 크게 받았을 수 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대본이 원작인 만화와 드라마의 텍스트로서의 차이를 잘 메웠다고 생각합니다. 극화하기 위해 만화에 없는 캐릭터가 생겼고 그 캐릭터가 나름 16부짜리 드라마를 단단하게 이끈 공신이었습니다. 다만 11부에서 14부로 흐르면서 강화된 애정 라인은 [쩐의 전쟁]이란 드라마의 본령과는 어긋난 이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멜로로 인해 오히려 드라마가 평범해져 버리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좋은 연기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박신양, 박진희, 이원종 등의 연기자는 대본과 연출이 챙기지 못한 디테일을 촉박한 일정 속에서도 챙기는  프로페셔널다운 모습을 내내 보여주었습니다. 김정화나 신동욱의 연기도 회를 거듭하며 안정되었기에 '이제 어디 가서 제 밥그릇은 했다'는 칭찬을 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동욱의 하우젠 어록이 나오는 것을 보고 촬영 현장에서 더 챙기고 집요하게 테이크를 반복하지 않았던 점이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신동욱 군이 그런 세간의 비평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약(藥)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참으로 훌륭해 보였습니다. 박신양의 연기는 어떤 이들은 철저히 계산된 연기라고 분석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의외로 순발력이 뛰어나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디테일을 챙기는 감성이 탁월했습니다.  그를 비롯해 [쩐의 전쟁]에 출연한 연기자들은 자신의 씬과 드라마에 대한 책임감이 대단한 배우들이었습니다. 좋은 드라마, 완성도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열과 성이 오늘의 [쩐의 전쟁]의 결과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장태유 감독은 드라마의 밋밋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엄청난 폭발력으로 무장시켰습니다. HDTV시대를 맞으며, 저는 배우의 약점을  노출시킬 수  있는 타이트 샷을 기피했습니다.  장감독은  저와는 반대로 오히려 아날로그 시대보다 더 타이트하게 찍어 연기자의 감정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스턴트 장면이나 차량 추격씬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같은 연출로서 그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완성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장감독의 공은 이런 영상미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독으로서의 아집을 버리고 배우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여 모든 배우와 스텝이 드라마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한 여유가 오히려 평가의 대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번외 편은 새로운 시도임이 분명했지만 충분한 준비가 없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번외 편을 촬영하려 나갔을 때 많은 시청자들이 이미 드라마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시청률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결과는 의외의 선방이었습니다.  SBS로서는 동시간대에 한국이 이긴 축구 중계와 맞붙어 시청률을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달라진 경쟁의 양상, 번외 편이 갖는 내용의 한계 등을 감안한다면 저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번외 편에 새로 섭외된 연기자들은 급하게 출연 결정을 했고, 빠듯한 일정 속에 촬영해서 그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점은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미안하고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박해미 씨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고 생각합니다. 박해미 씨 피자 잘 먹었습니다.


번외 2편의 동포사 장면에서는 오디오 음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카메라 두대로 촬영하던 도중 한쪽 카메라로 연결된 오디오선이 단선이 되었습니다. 다른 한쪽의 카메라에서 오디오를 뽑았으면 문제가 없었을 터인데 편집실에서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이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드라마의 B팀은 저희들끼리 농담 삼아 '신속, 친절, 정확'을 모토로 '우리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자세로 일한다고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스텝 크레디트에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던 이기용 촬영감독, 유병준 조명감독. 김준환 오디오 감독등 B팀 스텝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B팀치고는 진~하게 일했습니다.


[쩐의 전쟁]에 관심을 가져준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8년 [일지매]로 찾아뵙겠습니다.



한 여름 생각지도 못하게 진하게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원종, 김광식, 김뢰하 등 좋은 배우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신양은 본인의 기대 수준과 욕심이 많아, 다른 배우와 스태프를 볶아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매씬 전력을 다하고, 지쳐 나가떨어져 다음 장면 촬영에 쉽게 돌아오지 못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신인이었던 신동욱 군은 신병으로 인해 오랜 기간 업계를 떠나 있다 최근 복귀한 것을 보고 다행스럽게 느꼈습니다. 어려운 현장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박진희, 김정화 배우도 앞으로 더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HDTV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UHDTV가 들어온 지금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장태유 감독은 이제 프리랜서로서 같이 야인이 되었습니다. 지난 <닥터 로이어> 촬영 때 제작 사무실에도 찾아주었고, 커피차를 보내준 고마운 후배로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TV드라마의 전성기를 맛봤던 드라마였습니다.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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