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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Aug 20. 2023

<훌라걸스> 상투적이지만 괜찮은...

2007년 3월 11일 쓴 글



최근에 본 가장 상투적인 영화 두 편을 고르라면 전 [라디오 스타]와 [훌라걸스]를 꼽겠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이 면 주인공이 성취하려는 목적과 그 과정을 방해하는 갈등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뒤로 벌어질 이야기가 워낙 분명해서 관객은 감독과 두뇌싸움을 벌일 필요도 없습니다. 영화  장면 여기저기에 숨겨진 실마리나 복선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의자에 기대서  영화가 가져다줄 상투적인 기쁨을 기다리면 됩니다. 라디오 스타에서 나온 '퇴물 스타의 지방 DJ성공기'도 그렇거니와 이 영화의 '탄광 소녀 하와이안 댄서 성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는 점점 적자폭이 커지는 탄광을 점차 폐쇄하기로 결정합니다. 대신 그곳의 온천을 이용해 휴양지를 만들어 탄광에서 해직된 인원의 일부를 흡수하려고 하와이안 댄서를 모집합니다. 주인공 기미꼬에게는 이 일본판 부곡 하와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견뎌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어야 하는 것이 훌라춤입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갈등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다 탄광촌까지 흘러들어 간 춤선생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고의 댄서로 거듭납니다. 근데 바보 같은 관객은 이 뻔한 성공기에 왜 감동하는 걸까요?


이 영화에는 시대를 건너 증명된 진정성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캐릭터의 진정성, 잔재주를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카메라를 갖다 댄 감독의 진정성, 춤을 배우기 위해 오랜 시간 고생했을 배우의 진정성, 실화이기에 더욱 값진 이야기의 진정성은 이 영화의 상투성을 극복하고야 맙니다. 그 진정성이 영화의 막바지엔 완고한 관객의 눈에서조차 눈물을 쏙 빼놓습니다. [샬 위 댄스]보다 기발하지 않고 [빌리 엘리엇]보다 캐릭터의 깊이가 느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이의 성의는 그 어느 영화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성의에 관객도 어느 순간 꼴딱 넘어갑니다. 마치 고개와 허리를 바짝 숙이고 '스미마셍'을 외치는 저돌적인 겸손함에 용서를 한 것일까요? 그들의 들이댐에 관객들을 여기저기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영화는 관객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데 어쨌든 상투적이었지만 전 괜찮았습니다.


 덤으로 주인공 여배우... 이와이 순지의 영화에서 한 번 본 그녀도 여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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