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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Sep 03. 2023

인연으로 먹고사는 사람

2007년 1월에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다.

정체 모를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누구세요?'하고 묻자 '저예요, 선배님' 하고 귀여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예요, 선배님'이란 말투는 자주 연락하고 지낸 후배가 할 소리인데 영 목소리가 낯설다.  알고 보니 어떤 잡지의 전화 마케팅 담당자이다. 


나름 교풍이 센 학교를 졸업했다. 학교 선후배가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된 적이 많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학연을 따져가며 도움을 청하면 어쩐지 도와줘야 한다는 부채감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가 학연이나 지연을 따지는 문화가 사실은 복잡하게 얽힌 인맥을 범주화, 분류화해서 특정인을 분명히 기억하는 요령이라고 주장한 것을 읽었다. 하지만 학연을 따지는 것이 솔직히  '덕 좀 보겠다.'는 얄팍한 마음에서 나온 것 아닐까. '도와주겠다'라는 의도라면 아름답지만, '도움 받겠다란  관점에서 보면 공정하지 못한 집단 이기주의일 수 있다.


사회 연결망이 발전하지 않은 시절에는 학연이나 지연이 중요했을 것이다. 같은 학교나 지역에서 추억을 나눈 인연은 일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복잡해지고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새로워지는 요즈음 과거의 인연을 통해 인맥을 만든다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인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필요한 일에 최적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학연과 지연이란 좁은 울타리 속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때, 신임 교수를 임용하는 방식을 본 적이 있다. 같은 학교의 대학원을 다닌 사람은 가급적 신임 교수 임용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같은 학교 학부를 졸업했다면 더더욱 타학교 대학원을 나오는 것이 교수로 임용되는데 그나마 유리했다. '학문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보였다.


최근 한 기업의 대표를 만났다. 많은 사업을 성공시킨 대표와 이야기 끝에 괜히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대학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장사와 사업에 관심이 있어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의 대답에 그런 질문을 한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 얼굴이 붉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나중에 방통대를 졸업했고, 내 모교의 특수대학원도 졸업하셨지만 구차하게 학력을 과장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의 자신감과 솔직함이 돋보였다.

 

 학연, 지연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 사람을 찾는 것은 다양성을 추구하거나 좋은 성과를 올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동문을 칭하면서 인정에 호소하면 한심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만나고 교류하지도 않았고, 같이 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면, 남과 다르지 않다. 학연이란 실 같은 이유로 도움을 청탁을 하고 일이 성사되길 바란다는 것은 도무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상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상품을 구입하면 이러저러한 이점이 당신에게 주어지니 사시기를 권합니다. 더구나 이번 기회에 사시면 가격도 저렴합니다.'가 고객을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상품의 장점은 놔두고 '당신과 나는 학연이 있으니 하나 사십시오.'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학교, 지역, 연고 치우고... 실력과 인성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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