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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07. 2023

<뉴스룸>(2012)

2013/04/25


드라마에는 항상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극적인 상황을 줘야 시동이 걸립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원하는 목표는 도무지 달성하기 어려워 보여야 합니다. 시청자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난관을 뚫고 그 목적을 달성할지 궁금해하는 순간, 드라마는 재미있어집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꿈이 너무 크고 공허하면 드라마는 지루해집니다. 주인공 개인의 욕망에 충실해야 드라마가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2012년 미국 HBO에서 방송한 <Newsroom>은 이상한 드라마입니다. 공허하고 거창한 명분을 쫓고 있는데. 드라마는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뉴스룸’의 주인공들은 ‘뉴스앵커’와 ‘기자’들이고 그들의 목적은 ‘뉴스다운 뉴스,’제대로 된 방송‘을 해보자'는 거창한 공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난관은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점, 그렇기에 경영진의 서릿발 같은 눈초리가 그들에게 꽂힌 다는 것입니다.


좋게 말해서 중도주의자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무색무취이며 시청률 지상주의자였던 ACN 앵커맨 윌 메커보이는 한 대학에서 벌어진 토론회에서 “왜 미국이 위대한지” 질문을 받습니다. 농담으로 그 질문을 대충 넘기려던 윌은 “미국은 위대하지 않다. 위대했던 적은 있었다.” 라면서 그의 양비론적인 입장을 박차고 폭풍 같은 연설을 합니다. 평소의 윌이라면 상상도 못 할 언동이었습니다, 그 토론회장에서 윌은 상처만 남긴 이별을 했던 연인이자 뉴스 프로듀서, 맥킨지 맥헤일를 보고 그의 평정심이 무너진 탓도 있었지요. 


회사로 돌아온 그는 자기의 스탭이 모두 교체되었고, 새로운 뉴스 PD로 맥킨지가 온 것을 발견합니다. 그 뒤로 그들을 케이블 뉴스채널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목표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뉴스다운 뉴스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사에서 20년을 근무한 저에게도 새로운 자극이었습니다. '무엇인 언론인가', '무엇인 뉴스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퍼부어주니까요. 물론 저는 드라마 프로듀서이기에 뉴스를 만드는 사람과는 다른 입장과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청률을 쫓던 20년 동안, 저는 ‘무엇이 좋은 드라마인가, 어떤 드라마를 시청자에게 보여주어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잊고 살았습니다. 나아가 무엇이 ‘TV 드라마인가?’라는 고민은 해본 적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뉴스룸의 제작진들은 이런 중요한 질문의 답을 시청자와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ACN, 즉 Atlantis Cable Network라는 허구의 방송사를 무대로 했지만, 미국을 뒤흔든 중요한 뉴스를 실제로 다루면서 드라마보다 더 현실적인 공간과 담론을 이끌어냈습니다. 뉴스룸을 보면서 저는 시청자로서 또 한편 프로듀서로서 같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뉴스를 뉴스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뉴스가 참된 뉴스일까요? 과연 우리 언론인은 이런 뉴스의 정의와 필요성에 대해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만큼 고민하고 뉴스를 만들고 있을까요? ‘뉴스룸’의 캐릭터인 프로듀서 맥켄지 맥케일은 이렇게 말합니다. “뉴스룸은 법정이고, 앵커맨은 법조인이야. 앵커맨은 양측의 의견을 모두 대변하는 변호인이고 증인들을 조사해서 사실을 드러내야 만해.”


‘뉴스룸’의 캐릭터들이 내세운 뉴스의 가치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1. 이 뉴스는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필요한 정보인가?(Is this information we need in the voting booth?)

2. 이 뉴스는 가장 좋은 형태의 논쟁거리인가?(Is this the best possible form of the argument?)

3. 이 뉴스는 역사적인 맥락에 들어있는가?(Is the story in historical context?)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우리 방송사에서는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뉴스의 가치를 따지는지 정말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룸’의 제작자이자, 작가인 아론 소킨은 현학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드라마로 잘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영화 “A few good man”과 같은 법정물의 대가이기도 하고, 미국 대통령을 정치판의 이면을 낱낱이 그린 드라마 “웨스트 윙”이 바로 그의 손끝에서 나왔습니다. “웨스트 윙”은 미국의 헌법과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드러내었습니다. 부시의 공화당 행정부 속에서 방송했지만, 역설적으로 드라마 속에서는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출신의 민주당 대통령을 내세워 미국의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했습니다.


아론 소킨은 이 드라마를 구상하면 CNN, Fox와 같은 방송국의 뉴스룸에서 한동안 들러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 정치적인 지향성을 지닌 뉴스 앵커, 기자, 경영진을 만나보았답니다. 여러 가지를 묻고 토론했지만, 아론 소킨은 그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를 꼭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가장 이상적인 뉴스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런 뉴스를 만들지 못하게 했던 이유는 무엇이냐는 점이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질문을 적용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TV드라마는 무엇이고, 지금까지 그런 드라마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 것입니다. 뉴스룸이 방송하는 동안 이 질문은 내내 제 머릿속을 울리게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TV드라마는 무엇이고, 지금까지 그런 드라마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묻고 싶어 진다.(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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