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국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PD Sep 28. 2023

미국일기 8

호칭문제.  2005년 3월에 쓴 글.

우리나라에서 상대를 부르는 호칭에는 존경의 의미와 계급의 성격이 들어있습니다. 남이 자신을 제대로 대우하며 부르는가는 모두가 상당히 신경을 쓰는 문제입니다, 호칭 문제가 잘 정리되지 않을 경우에는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호칭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나이가 다를 때, 동기로서 인연을 맺는 것과 선후배로서 인연을 맺는 것은  앞으로 완전히 다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는 교풍이 센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가 재학 중이던 시절은 선후배의 관계가 엄격하기도 했고, 반대로 나이가 달라도 학번 순으로 친구관계를 맺는 시기였습니다. 제 동기중 삼수를 한 친구는 일 년 학교를 일찍 입학한 저하고는 무려 네 살 차이가 났습니다. 저는 재학 시절 이분과 네 살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그냥 친구로 지냈습니다. 졸업할 무렵에야 그 사실을 알고서, 이제는 반쯤은 형으로 반쯤은 친구로 대합니다. 일 년 일찍 입학한 이유로 후배도 동갑이거나 나보다 한 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 후배는 지금도 선배 대접을 하고 말을 높입니다.


방송국에 입사하니 또 다른 문화가 펼쳐졌습니다.  생물학적 나이에 따라 형, 동생이 되고,  그 뒤에 입사순서를 따집니다. 그런데 보도본부에서는 엄격히 입사순서로 따지고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동기는 모두 말을 편하게 합니다. 보도본부에는 아직 군사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드라마본부에는 대충 나이로 따지는 분위기입니다. 생물학적 나이를 무시하고 입사 순서를 따지면 좀 덜 돼먹은 친구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사 연차에 비해 나이가 어린 후배 몇몇이 입사순서로 호칭을 하겠다고 덤비면서 약간 무질서한 분위기가 펼쳐졌습니다. 이 때문에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가급적 어린 사람을 뽑아 회사의 입사 서열과 생물학적 나이를 맞추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가 봅니다. 신입사원 선발 요강에는 '동점일 경우 생년이 어린 사람을 선발한다'란 규정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서열을 따지는 양상은 남성과 여성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남자는 오히려 사회적 지위나 직급을 존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는 웬만하면 나이를 따져 곧장 언니, 동생으로 호칭을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직무상 관련이 없거나 친하지 않은 남자에게 오빠라고 부르거나 말 놓으라고 하는 것 굉장히 싫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국에 오니 또 문화가 달라집니다. 나이, 직위에 관계없이 모든 이름을 부릅니다. 대명사는 'You'로 통합이 되잖아요. 심지어 교수도 자기에게 sir를 붙이면 어색해하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저 같은 학생에게도 'sir'를 붙이며 대우하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친구 같은 평행한 관계로 만납니다. 호칭을 구분하지 않으니 저보다 스무 살 넘은 사람과도 쉽게 친구가 됩니다. 열 살이나 어린 학생과도 장난치고 놀 수 있습니다. 결코 나이를 더 먹고, 덜먹고에 따라 존중하거나 존대를 강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반대로 직위나 계급에 대한 존중은 한국보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나이도 어린 주제에 지가 부장이면 다야?"'라는 식의 빈정거림은 없어 보입니다. 새로 취직하거나 이직할 때도 나이가 많아서 경쟁자보다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은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나이에 따라 형, 동생이 되었지만, 여학생들은 서로 존중하고 말을 높이는 재밌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저는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선 복잡한 호칭 체계가 없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연출 잘하는 것, 극본 잘 쓰는 것은 나이와는 별 관계가 없기 때문 입다. 어린 사람이 재능이 많을 수 있고 선배의 경지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배우의 몸 값은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요. 선배라는 이름으로 엉터리 관행이나 전통을 강요하는 때도 있었고, 이런 권위로 인해서 학문적인 토론이나 비판을 제어한 것이 벌어지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오랜 사회생활 끝에 이제는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배로서의 역할은 '내가 저지른 실수를 후배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돕자'는 것입니다. 제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반대로 제가 더 경험이 많고 나이가 많기에 후배를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저를 꼰대로 만들지 않는 왕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님, 오빠 하면서 달라붙는 후배들에게 더 끌리는 것은 인정합니다. 미국사람들은 이런 끈끈한 맛이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일기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