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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07. 2023

<대풍수>를 마쳤습니다

2013/02/14


대풍수를 마쳤습니다. 오래 준비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그 준비가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첫 시청률을 보고, 제 드라마가 시청자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기획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경쟁사의 드라마가 그리 세지 않았고, 편성 상 재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SBS와 저 개인적으로 참담한 결과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영웅보다는 '한 개인의 욕망과 목적에 충실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시청자들은 공감하지 않는 대의명분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미원국'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내세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주인공 개인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는 법칙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풍수'와 '사주', '관상' 등 드라마에서 다루려는 소재와 역사가 결합하지 못했습니다. 땅의 기운을 읽고 조절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는 이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즉석 복권을 벗기듯 그 결과를 바로 볼 수 있는 소재였으면 쉬었을 텐데, 몇 세대를 지나 그 결과를 얻는 풍수의 특성이 드라마에 잘 녹아들지 않더군요. 사주와 관상은 음양오행 등 동양 문화의 정수와 닿아 있는데 드라마 속의 사건과 사고로 녹이는 적당한 해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준비가 부족한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밀도와 흥미, 인물의 관계와 갈등이 오늘의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는 부족했다고 생각해봅니다. 쉬운 이야기를 쉽게 푸는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어려운 얘기를 어렵게 풀어간 드라마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제 드라마는 후자에 속했었나봅니다.


드라마 초반부터 제작비의 유동성 문제가 터져 중반부터는 제작 규모를 급히 축소했습니다. 캐스팅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많은 배역이 일찍 죽거나 드라마에서 조기에 퇴장했습니다. 드라마의 결과에 관계없이 끝까지 완주해준 배우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흔들리는 저를 붙들어 준 주인공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35회까지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성, 지진희, 송창의, 김소연, 이윤지' 등 대풍수의 주인공들은 연기자로서 나무랄 수 없는 성실한 자세로 작품에 임했고, 성숙한 모습으로 스태프와 연기자들을 이어주었습니다. 대풍수를 채워준 조연 배우는 제가 그 기량을 충분히 활용 못 해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저를 비롯한 대풍수 스태프, 연기자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풍수를 지켜봐 주신 시청자 여러 분, 고맙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픈 손가락처럼 남아 있는 드라마입니다. 당시의 사진이나 영상을 만나면 미술이 좋아서 놀라곤 합니다. 제작사의 채무불이행과 그로인한 소송이 이어졌고, 그것이 해결되기까지 7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잘된 작품은 추억이 되어 기억에 남지만, 이런 작품은 상처가 되어 피부에 새겨집니다. 잊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여러 곳에서 <대풍수>와 관련된 소식을 듣습니다. 스토리보드 작가 강숙씨가 일본에서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면서, <대풍수>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말고도 잊지 않는 분이 또 계시네요.(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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