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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2. 2023

<은교>

2012/04/19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영화나 책을 보지 않으실 분을 위해 조심했지만 누설된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시인 이적요는 집을 청소하러 들린 고등학생 은교의 젊음에 빠져듭니다. 노인이 되어 치르는 사랑의 열병은, 스승에게 문학적 열등감을 지닌 제자 서지우와의 갈등을 촉발시키며 그들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습니다.


애초에 소설 [은교]는 영화로 옮기기에는 무리한 작품이었는지 모릅니다. 소설에서 죽어가는 시인 이적요와 그의 제자 서지우, 그리고 고등학생 은교는 독자의 손바닥 안으로 쉽게 들어오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러니로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노인이지만 젊음 아이를 사랑한 시인, 무능함에도 유능함을 가장한 제자, 젊지만 노회 한 은교의 아이러니는 오히려 이들에게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렇기에 세 인물은 살아있었으며 개성적이었고, 무엇보다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로 바뀌면서 이런 인물의 다층적이고 복잡한 성격이 단순해졌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증오할 수 있는, 인간이란 감정의 동물이 가진 복잡함을 단순화했습니다. 저는 이런 단순화를 영화에 상업성을 넣으려 한 시도와 영화라는 미디어가 가진 한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있었던 가장 강력한 반전을 영화에서는 욕망의 발로로 재단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를 본 후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은교>는 책을 먼저 봐야 합니다. 영화에는 책에서 나온 깊이와 향기를 느낄 수 없습니다.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에겐 이 영화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했던 두 남자의 몸부림'으로 보일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로서 서로가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스승은 문학을 무기로 쥐었고, 제자는 젊음을 무기로 지녔습니다. <은교>는 서로에게 결여된 무기를 갖고 싶어 하는 두 남자의 욕망과 갈등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은교'의 젊음보다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은 '서지우'의 젊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은교의 젊음과 매력만을 강조했다면 정지우 감독은 원작의 핵심을 놓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지우 보다 은교의 매력이 스크린을 장악했음은 분명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는 은교 역의 김고은입니다. 김고은을 발굴한 것은 정지우 감독이 영화의 한 축을 튼튼하게 세운 것을 뜻합니다. 영화의 은교만큼 소설의 은교를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젊어서 아름답고, 당돌해서 아름답고, 그래서 무엇을 해도 아름다운 은교는 소설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낸 듯했습니다. 김고은 양은 신인 배우라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도발적인 데뷔를 해냈습니다.


박해일의 노역 분장은 감독에게나 배우에게나 가장 큰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박해일은 이런 선택은 다른 무엇보다 이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고 투자를 가능하게 만든 힘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관객은 박해일의 도전을 적지않이 의식하고 영화를 보게 하였습니다. 자연스러워할 노인의 설렘이 희극적으로 비친 부분은 그 결과로 인한 부작용이었습니다. 다행히 중반부터는 노인이 된 박해일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연출이었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은교'는 소설로서의 텍스트가 더 걸맞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은교'는 예술과 상업성 사이에서 약간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서지우의 죽음에 관한 반전을 무시한 용기는 영화를 재미있게 하려는 선택이었다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누적된 선택은 소설 [은교]에서 드러낸 인간의 아이러니한 감정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김고은은 오늘날까지 스타이다.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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