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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5. 2023

<키사라기 미키짱>

2011/07/27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대본과 연기, 연출이 조화를 이뤄 기분 좋은 쾌감을 관객에게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돌 스타 키사라기 미키가 자기 방에 불을 지르고 자살한 1년 뒤, 키사라기 미키의 골수팬 다섯 명이 처음 오프라인에서 모여 추도식을 열기로 합니다. 미키짱 팬 사이트에서 최고의 정보력과 수집 컬렉션을 자랑하는 '이에모토', 머리는 맹하지만 성질 급한 편의점 직원 '스네이크', 마초스타일로 앞뒤가 막힌 공무원 '기무라 타꾸야', 시골 농부로서 촌티가 팍팍 나는 '야스오', 그리고 닉네임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딸기 소녀'가 이 추도식에 참석한 팬입니다. 극 초반에는 오타꾸 팬으로서 캐릭터 대결을 벌이며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극 중반 '기무라 타꾸야'가 키사라기 미키짱은 '자살하지 않았다.'라고 선언하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로서의 변신을 시작합니다. 다섯 명의 키사라기 팬은 키사라기와의 관계를 하나씩 밝히면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팬들이 숨겨 온 진실도 폭로됩니다.   


연극은 희극에서 미스터리로, 미스터리에서 휴먼 드라마로 변신합니다. 이 연극이 재미있는 것은 그 변신이 아주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희극과 미스터리, 감동의 요소들이 배가되면서 여전히 극을 성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극이 장르에 불문하고 무조건 말미에는 감동 코드로 회귀하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회귀의 과정에서 극 초중반에 매력을 뿜었던 요소들이 사라지면서 정체가 애매해지는 상황을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키사라기 미키짱] 은 훌륭한 희극은 어떻게 극을 마무리해야 하는지 모범적인 답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휴식이 없는 일 막짜리 연극이어서 배우의 에너지 소모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본 미키팀의 무대는 에너지와 엔도르핀으로 넘쳐났습니다. '기무라 타꾸야'역의 이철민이 다른 배우에 비해 호흡이 짧아 보이는 것이 아쉬웠습니다만, 무대를 채워나가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에모토'역의 김 한과 '딸기소녀' 김병춘은 관객과 연기의 호흡을 맞추는 데 뛰어난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야스오 역의 최재섭은 영화배우 '유해진'의 대사 톤을 쫓아간 것이 양날의 칼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관객을 울고 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표현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그의 다음 작품에서 보여 줄 색깔을 기대해 봅니다.


연출 이해제는 연극의 영상화를 이룬 듯 거침없는 속도감과 동선으로 [키사라기 미키짱]이란 걸출한 대본을 무대에 성공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좋은 연출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잊게 한다고 말하듯이, 배우의 움직임이 워낙 자연스럽고 무대와 조명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극의 모든 부분이 잘 결합된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한 배우가 무대를 장악하는 동안 다른 배우들이 무대에서 놀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런 휴지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감추거나 극의 요소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딸기 소녀'가 무대에 방치되어 앉아 있다든지, 야스오가 '화장실'이나 무대 밖으로 외출하여 공백이 큰 것은 이 연극의 옥에 티로 보였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이야기에 공감하며 즐거울 수 있는 연극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키사라기 미키장]을 보신 분은 덥고 습한 여름날 계곡에서 시원한 약수를 들이켠 쾌감을 주는 대학로의 선물입니다. 종연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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