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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5. 2023

<고지전>

2011/07/12



고지전은 매우 공들인 영화임이 틀림없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그 빛이 바래진 작품입니다. 


고지전은 남북이 치열하게 뺏고 뺏기는 공방을 벌였던 애록고지에서의 전투를 다뤘습니다. 그 전투에서 희생당했던 군인들의 캐릭터를 잘 포착했지만, 가야 할 노선을 잃은 영화는 관객의 흥미를 돋우는 데 실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의 관계나 감정선은 관객의 동의를 얻기에는 너무 동떨어져 보입니다. 연출은 어느 순간 리듬감을 잃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벗어나고 싶은 고지전이 되게 하였습니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에서 보여준 감독의 깔끔한 뒷맛은 액션을 촬영하느라 소진된 듯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는 항상 주인공이 목표를 추구하는 안간힘에서 이야기의 동력이 생깁니다. 주인공의 목표는 결코 쉽게 달성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그 목표를 극의 중반에 쉽게 달성합니다. 그 이후 방향을 잃은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그 순간까지 갈팡질팡하며 표류합니다. 관객이 영화가 끝난 줄 알고 엉덩이를 들썩거릴 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상한 상황을 몇 번 반복합니다. 


'고 수'와 '신 하균'의 연기는 그들의 잠재력이 뿜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매너리즘을 깰 연출의 자극이 필요한 데, 장 훈 감독은 '공동 경비 구역'보다 신 하균의 연기를 퇴보시켰습니다. 이야기가 뒷 받침되지 못한 배우의 연기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허무한 연기가 펼쳐집니다. 신인 이제훈과 이제 열일곱 살인 이 다윗 군의 노력은 신선했지만 역시 허무하게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박상연 작가는 많은 얘기를 풀어놓았지만 한 줄로 꿰지 못했습니다. 박 작가에게는 TV에서 작업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보입니다. 주인공의 임무와 그 해결 방식이 흥미롭지 못하다면, 백 명의 조연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더라도, 그것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입니다. 간식은 아무리 먹어도 영양가가 높지도 잃고, 배를 불리지 못합니다. 고지전의 관객은 헛배가 불러오기에, 실망이 클 것 같습니다.  박상연 작가와 장훈 감독은 관객을 흥미롭게 하는 스토리의 전달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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