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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5. 2023

시간을 넘어 공유하는 장면

2011/06/19

지난 토요일 모교에 다녀왔습니다. 모교의 교수님께서 부탁한 일을 처리하고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재학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대학 방송국을 들렀습니다. 이제 그곳을 떠난 지 이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저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공간은 이제 제가 대학을 입학하던 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후배들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나 만난 후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했죠. 예전보다 시간을 지켜서 모이지는 않았습니다. 수습을 끝낸 정국원이 멋을 부리듯 담배 연기를 품어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젊음이 가득했고, 의무와 정(情) 속에서 방황하는 그들의 고민이 엿보였습니다. 회의 중간에 박장대소를 하고 농담을 던지고, 동영상 촬영을 하는 후배들은 이십여 년 전의 저보다 훨씬 자유로웠습니다. 


이맘때면 학교 방송국을 이끌 주역들이 교체됩니다. 새로운 3학년 국장이 퇴임하고 2학년 2학기가 된 신임 국장이 취임합니다. 이취임식의 진행 방식이  저의 학창 시절과 다를 바가 없어 놀랐습니다. 삼십 년을 넘게 비슷하게 치르는 행사를 바라보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습니다. 좀 새롭게 바꿔보지 하는 아쉬움이 들 무렵, "에이 더러워서 이 자리에 못 앉겠네!." 하면서 신입 부국장과 보도부장이 자리를 바꾸는 이벤트로 좌중을 웃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마음속 깊이 따뜻함을 느낀 것은 후배들이 덕담을 건네며 지난 방송국 생활을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3학년 1학기까지 방송국원으로서 할 바를 다 했지만, 한 학기 방송을 더 하겠다는 한 후배를 보았습니다. 저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전임 국장은 울먹이면서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인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의 고백은 제가 이십 년 전에 받은 선물을 다시 생각나게 해 주었습니다.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아쉬움으로 후배는 말을 쉽게 끊지 못했습니다.


어린 후배들을 바라보면서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했습니다. '저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언제나 가슴 한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십 년 만에 후배들의 행사를 보고 '그들도 저만큼 진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인터넷이 도입되었고,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사람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어 보입니다. 80년대 제 대학생활이 치열한 것처럼, 21세기 그들의 삶도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후배들에 대한 불안함을 버리고 저는 다시 사회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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