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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5. 2023

<해빙> 1996

2011/05/02 조연출 시절 이야기

1995년 말, 저는 아직 예비군 시절이었습니다. [신비의 거울 속으로]의 조연출을 마치고 3박 4일 휴가와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출근했더니 당시 부장이셨던 운군일 선배께서 부르시더군요. 이미 제작이 시작되어 미국 촬영을 떠난 <해빙>의 조연출이 되었음을 통고받았습니다. 부랴부랴 안동일 씨의 원작 [해빙] 3부작을 구해 읽고, 그때까지 나온 대본을 본 다음 뉴욕 JFK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SBS 같은 민영 방송사에서 <해빙>과 같은 정치색이 강한 드라마를 만든 것은 신기할 정도입니다.  남남북녀의 사랑을 다룬 이 드라마는 여배우 '황수정'의 데뷔작이었고, 박상원, 황신혜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로서는 거의 6개월의 제작 기간을 하루 4시간의 수면으로 버텨낸 험난한 작품이었습니다. 

황수정 씨. [해빙]도 예전 사진을 구하기 힘들군요. 회사에는 보관되어 있겠지만...


북한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창원 시청에 인공기를 걸었다, 창원시장이 목이 잘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탓에 연출이었던 이강훈 감독과 회사 간부가 국정원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등 프로그램 내외부로 여러 가지 고충이 있었습니다. 


<해빙>은 그 시기에 이뤄진 남북 해빙의 역사적 현실에 가공의 이야기로 남남북녀의 사랑을 더해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추구했습니다. 연출은 이강훈 PD, 작가는 권인찬이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맺어진 이강훈 선배와의 인연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저를 괴롭힙니다.(!!) 제가 조연출하던 시절, 드라마 연출가 중 독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여럿이 있었습니다. 대충 김종학 PD, 이승렬 PD, 이장수 PD, 오종록 PD, 이강훈 PD가 그들입니다. 이강훈 선배는 MBC에서 <여명의 눈동자>의 프로듀서를 하고 SBS로 옮기신 선배였습니다. 오자마자 [머나먼 쏭바강]이란 대작을 연출한 독종 선배의 밑으로 갔으니 저의 조연출 생활은 험난할 수밖에 없었죠.  대한민국에 북한을 재현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어서, 방송 직전에 나온 대본에 '평양 거리 일각',  '만경대 김정일 생가 ', '유경 호텔 로비' 등의 장소가 튀어나올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리며 긴장했습니다. 그때 만약 대작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반쪽짜리 연출이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뉴욕에 와보니 제작진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미국인 스탭과 한국인 스탭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가장 큰 문제는 촬영 사전 준비를 담당한 현지 프로덕션이 부실했었습니다. 제작비 절감과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인해 제작 경험이 없는 재미교포 프로덕션을 선정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거기에 대본 또한 확정이 돼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촬영하고 밤새서 그다음 날의 촬영을 준비하고, 한국과는 제작 시스템이 다른 미국 스텝들과 회의와 회의를 거듭해서 하나씩 결정하고, 매일매일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단기간에 제가 영어 실력이 늘었을 정도이니 얼마나 치열한 입씨름이 오갔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때 얻은 교훈은 해외 촬영할 때 현지에서 저명한 코디테이터나 프로덕션과 제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을 두려워 제작 경험이 부족한 교포들과 일하는 것은 오히려 큰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현지 프로덕션을 끼고, 통역 요원을 갖추는 게 일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촬영팀이 쓰는 용어 중 '도둑 촬영'이란 말이 있습니다. 촬영 장소나 건물 등의 소유주에게 허가를 받지 않고 몰래 찍는 경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해빙>은 국내외에서 참 도둑 촬영을 많이 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마이애미에서 사탕수수밭을 몰래 찍다가 샷건을 든 관리인에게 위협을 당한 적도 있고,  수도권의 모 대학에서 북한 상징물을 붙여 놓고 촬영하다  보안 관계 당국(경찰, 군, 안기부)이 총출동한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뉴욕의 UN 본부 앞에서도 도둑 촬영을 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미국 스태프들도 '도둑 촬영'을 가끔 하는지 영어로도 이 표현이 있더라고요.


JFK에서 찍어야 하는 장면은 때마침 교황님이 뉴욕을 방문하고, 어떤 사람이 교황님과 클린턴 대통령을 살해하겠다고 협박 전화를 하는 바람에 허가를 못 얻었습니다. 결국, 3시간 거리인 보스턴의 로간 공항에서 대신 촬영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항은 2001년 미국의 9.11 사태 때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린 비행기가 이륙한 장소랍니다.


미국에서 다 찍지 못한 장면은 한국에 가지고 들어와 다시 찍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한국 땅에 없는 미국을 재현하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진들은 '작가가 무심코 쓴 한마디에 온 스태프들 죽어 난다'란 푸념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여하튼 첫 방송이 나갔습니다. 생고생하며 억지로 찍은 과정과는 달리, 아름답고 화려한 맨해튼의  야경이 무심히  브라운관에 나오는 데 저도 모르게 감회에 젖어 눈물이 흐르더군요. 이때 만든 뉴욕에서의 인연과 추억이 저를 2004년 다시 그곳에서 공부를 하게 한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크리스티!!)


 이 외에도 <해빙>에 얽힌 추억은 참으로 많습니다만 이만 줄입니다.


원래 <해빙>의 경쟁 드라마는 MBC의 <전쟁과 사랑>이란 대작 드라마였습니다. 우리는 <전쟁과 사랑>과의 승부는 자신이 있었기에 신이 나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1회를 방송하던 날, MBC가 기습적인 편성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당일 아침까지 예고되었던 <전쟁과 사랑>이 편성에서 사라지고 <제4공화국>이 긴급 편성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대 프로그램이 바뀐 것입니다.  이유는 <제4공화국>의 경쟁 프로그램인 SBS의 <코리아 게이트>를 피해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방송가의 시청률 전쟁의 양상이 이렇습니다.


[해빙]을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니  '요즘의 T V드라마는 '로맨스'만 남아 있고 '사회성'은 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가 사회의 여론을 선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드라마 PD는 언론인에서 '딴따라'가 되었고, 드라마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스토리'만 남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시청자들이 '맛있어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과,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요즘 드라마는 너무 전자에 주력하고 있고, 때문에 드라마가 모두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래시계>의 가치는 위의 두 가지 음식을 잘 버무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사랑'만큼 큰 가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삶에는 '사랑' 외에도 다른 가치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전히 드라마에서 '사랑놀음'만을 하고 있다면, 저는 오늘 우리의 드라마를 척박하게 만든 공범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다양한 소재의 드라마, 순수와 상업이 공존하는 TV드라마의 다원적 환경은 앞으로 보기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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