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PD Jun 15. 2023

연극 [루시드 드림]

2011/02/12


[루시드 드림]은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꾸고 있음을 알아채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말로 '自覺夢(자각몽)'이라고 합니다. 꿈을 꾸는 순간 그것이 현실인지 몽상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생생한 현실을 꿈이라고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새로운 상상이 가능합니다. 가까이는 영화 '인셉션'도 있었고, '매트릭스'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멀리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과 같은 비유도 있습니다. 연극 [루시드 드림]은 이런 현실과 몽상의 모호한 경계를 여러 겹으로 쌓아올려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변호사 최현규는 일주일 전 자살한 선배 변호사 김선규의 남긴 도스토옢스키의 [죄와 벌]을 받습니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은 책의 중반 이후부터 모두 '이동원'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 유품을 받게 된 계기로 최변호사는 열세 명을 연쇄 살인한 '이동원'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이동원'은 최변호사를 만나면서 '숙제'를 냅니다. '숙제'를 하면서 변호사와 죄수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죄수의 내면을 파헤쳐야 하는 최변호사는 오히려 자신에게 억눌려 있던 무언가를 만나게 됩니다.





이야기는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이동원이 실제로 연쇄살인범인지, 김선규 변호사가 자살한 이유는 무엇인지, 최변호사는 과연 두 건의 범죄를 실제로 조장하거나, 저지른 것인지, 더 나아가 최변호사가 이동원과 동일인일지도 모른다는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관객은 도대체 '나비'가 현실인지, '내'가 현실인지 헛갈려 하는 '장자'가 됩니다. 추구하다 보면 인생 자체가 꿈인 것인지, 꿈이 현실인지 헛갈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변호사와 연쇄 살인범의 만남은 관객으로 하여금 '선과 악', '상상과 현실', '망각과 기억' , '욕망과 절제'등 상반된 가치들이 뒤섞이고 서로 침범하는 모습을 보게 합니다. 그 충돌은 이야기의 갈등이고 극을 끌어가는 문제인데, 충돌의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흥미롭습니다. 긴장과 서스펜스가 무대를 장악하고, 강렬한 에로티시즘은 캐릭터의 심층 의식을 이해하는 장치로서 작동했습니다. 배우들의 에너지는 관객에게도 전달되어 [루시드 드림]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으로 변합니다.


복잡한 이야기를 제작진은 여러 디테일을 통해 친절하게 전달합니다. 금연과 흡연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나눕니다. 현실과는 달리 파괴되어 가는 내면은, 극의 흐름을 통해 주인공의 외양을 망가뜨리며 보여줍니다. 극에서 주어진 실마리를 곱 씹으며 이야기의 퍼즐이 맞았는지 복기하는 과정도 이 연극에서 맛보는 별미였습니다. 


현실은 불안합니다. 현실을 지탱하는 기둥이 한순간의 꿈처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잡한 얘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힘과 테크닉이 대단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수작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18년 차 드라마 PD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