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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6. 2023

사극을 만든다는 것

2010/10/25

사극으로 자녀들 역사공부를 시키신다는 부모님들께


드라마 연출자로서 저는 제 드라마가 혹시 시청자를 가르치는 계몽적인 콘텐츠일까 경계하고 있습니다.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이 드라마의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기도 힘든데, ‘교육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어불설성입니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오락물'인데 '교양물'로 변하는 순간 시청자가 외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무게 때문에 재미를 놓치기 쉽습니다. 더구나 제작자가 시청자를 가르치려는 의도를 가진다면, 예전 독재자들이 ‘선전선동과 여론 조작의 도구’로 TV를 활용하던 그 시절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들 앞에서 건방을 떠는 거죠.


그런데 사극을 제작하면 제작진의 입장이 위의 글처럼 명쾌해지질 않습니다. 사극을 역사 교육을 위한 시청각 교재라고 생각하는 시청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극이 일정 정도 시청률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시작하는 데, 오락물을 교육용이라고 간주하는 시청자의 오해 덕택이기도 합니다. 게임기인 닌텐도 DS를 학습용 기계인 것처럼 마케팅한 닌텐도의 전략이, 사극에도 비슷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사극은 교육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극을 교육적인 입장에서 비평하고 역사적인 고증에 집착하는 분을 만나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만드는 사람이 교육적 입장에서 만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극에서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사극을 만드는 사람에게 지켜야 할 고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를 위해 역사적인 사실(事實)을 함부로 조작,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역사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원나라나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런 것을 부정하면 그때부터 드라마는 사극이 아니라 판타지로 장르가 바뀝니다 연대기를 바꾸거나 사건의 주재자(主宰者)를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극의 제작진은 삼국사기나,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같은 사료의 각색자에 불과할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극은 이미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결말이 뻔한 드라마를 결말이 궁금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 제작진의 창의(創意)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작진들이 하는 방식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역사의 빠진 고리들에 주목합니다. 역사를 이루는 Fact는 사료나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으로 드러난 사실의 배후에는 다양한 인물의 갈등과 역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이 무엇(What)을 했다는 것은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지만, 왜, 어떻게(Why & How) 그런 일을 했는가는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갈등과 반목하는 고리들을 만들어 넣는 것입니다.


둘째,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냅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위인의 주변에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냅니다. 그 주변인으로 하여금 기존에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만들어 낸 가공인물이 역사상의 인물과 작용하고 반작용하면서, 사료에 갇혀 있던 위인이 피가 흐르고 살이 붙어있는 생생한 사람으로 되살아납니다.


셋째, 역사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현대인의 입장에서 새로운 해석을 하려고 애씁니다. 멀지 않은 예로 박정희, 이승만 등 우리 대통령들의 과거 통치 행위에 대해서도 사후(死後)에 조금씩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역사들이 후대 사관들의 정치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작진은 우리 시청자의 입장에서 공감할 만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잘되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이를 위해 사극을 제작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이 다루는 시기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창의적으로 변용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만날 수 없는 두 인물이 한 시대에 공존하거나 한 장소에 나타나는 일은 신중해야 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공부를 통해 다루는 시대에 대해 제작진의 주관과 철학이 생기면, 신중할 부분과 과감하게 대응할 부분을 구분해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事實)을 떠나 사극 미술의 영역에 이르면 사실 더욱 제작진의 운신의 폭이 좁아집니다. 저는 이 부분은 고증에 짓눌려 재미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흑백의 명주 저고리만 입게 한다면, 그것은 Documentary 지 드라마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큰 흐름은 거역하지 않지만, 역사의 지류에서 일어난 물보라와 소용돌이를 통해 사극을 보는 재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극의 교육적 기능은 어느 학생이 역사를 공부할 때 배우 이효원을 생각하고 선덕여왕 시절이 더 쉽게 그려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극을 교육용이라고 믿는 것은, 닌텐도 DS가 교육도구라고 믿는 것만큼 안이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닌텐도 DS만큼, 사극 제작진도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유해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극은 역사적 재현이 아닙니다. 역사 공부는 도서관과 강의실에서 책과 강의, 또는 역사적 현장을 방문해서 해야 합니다. 다른 장르의 드라마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시청자가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를 만드는 게 사극 제작진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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