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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6. 2023

드라마 제작의 위기

2010/09/04

[동이], [글로리아] 등 MBC 드라마 여러 편이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의 출연거부 탓에 방송에 차질을 빚게 생겼습니다. 다행히 SBS와 KBS는 협상이 타결돼 위기를 막았지만,  MBC의 위기 상황은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이런 파국은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외주제작사들이 연기자들의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했고, 그 지급해야 할 출연료의 누적액이 수십억 원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드라마 제작시스템은 방송사가 제작비 일부를 외주제작사에 지급하고 외주제작사가 나머지를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회당 1억 원의 제작비를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지급합니다. 외주제작사는 협찬과 각종 수익사업을 유치해 1억 원에 플러스알파의 제작비를 만들어냅니다. 일정금액을 회사에 넣고 손해가 나건 이익이 나건 나머지는 외주제작사에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제 드라마에 들어가는 제작비가 방송사가 준 회당제작비와 제작사가 충당할 수 있는 돈을 웃돌아 지출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스타 캐스팅으로 소수  스타에게 과다한 출연료가 지급되었고, 더불어 중견 연기자 등 배우출연료가 급상승했습니다. 둘째, 다른 제작 인건비(작가료, 스태프 인건비 등등)가 올랐습니다.

셋째, 외주제작사의 제작비 조달 능력에 기대어 연출자가 과거보다 제작비를 크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경기가 위축되면서 외주제작사가 협찬 등 제작비를 충당할 재원(源)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법리로 따지면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이미 제작비에 관한 계약을 마쳤고, 방송사가 약속한 제작비를 지불했다면이제 외주제작사가 제작비의 집행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런 제작 구조를 통해 방송사는 제작비의 초과 지출에 대해 안전망을 구축했습니다. 대신 이후에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일정 권리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사는 위험 부담도 없지만 대박에 대한 기대도 버린 것입니다. 


드라마는 성공했어도 외주제작사는 채무에 시달린 예가 있고, 반대로 드라마는 실패했어도 잇속을 차린 외주제작사도 있습니다. 여기서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발언권이 큰 사람들, 즉 작가나 대형 스타들은 거의 예봉을 피했습니다. 반대로 제작사나 연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조단역 연기자, 스태프진들에게 미지급 사태의 피해가 돌아간 것입니다. 심지어는 먹튀 식으로 제작사의 실체가 사라져 호소할 곳도 없어진 연기자들은 생계의 위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예조의 파업에 SBS와 KBS는 미지급 출연료에 대한 해결을 약속하고 파국을 막았습니다만, MBC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위기에 처했습니다. 앞으로의 제작 환경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 제작 능력, 재정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외주제작사의 시장 진입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처럼 대형 작가나 스타를 입도선매해 드라마 제작을 시도하는 신생 외주제작사는 앞으로는 방송사로부터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받을 것입니다. 제작비 지급 보증이나 여러 가지 형태의 안전장치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대형 제작사의 과점(寡占) 시장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제작 현장에서는 연출자보다 프로듀서의 권한이 강화될 것입니다. 작품을 잘 만드는 게 목적인 연출자와 작품을 '적절한 수준에서' 잘 만들어야 하는 프로듀서의 입장이 반드시 일치할 순 없습니다. 이제 연출자의 무모한 전횡이나 낭비를 견제하는 프로듀서의 권한이 세질 것입니다. 이게 선진국의 추세입니다.

셋째, 현재 연기자의 출연료 지급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연기자가 실제로 드라마를 위해 투자한 시간보다는 몇 회나 출연했나를 기준으로 출연료를 정산하는 등 현재의 방식에는 모순점이 많이 있습니다. 한 회에서 삼십 씬을 찍은 연기자보다 두 회에 걸쳐 두 씬을 찍은 연기자가 더 많은 출연료를 가져가는 등 문제점이 많이 있습니다. 한 번 올라간 출연료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는 현실도 문제 있습니다. 전성기가 지난 배우가 과거의 예를 들어 고액출연료를 계속 요구하는 것도 문제 있어 보입니다. 현재의 출연료 산정 방식에 많은 제작 주체들이 칼을 대려고 나설 것이 분명합니다.

넷째, 신규 연기자가 더욱 많이 시장에 진입할 것입니다. 시장 원리에 따라서 대체 가능한 연기자가 타협이 어려운 출연료를 요구할 때, 새로운 연기자가 그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제작비의 긴축 운영으로 연출자의 캐스팅에 제약을 받을 것이고 그 타결책으로 신인의 캐스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사태를 정리해 보니 결론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에게는 동지의식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제작주체로서 방송사, 제작사, 연기자, 연출자가 함께 공생의 길을 모색하지 않았습니다. 제작사에 위험부담을 떠넘긴 방송사, 시장의 크기를 오판하고 무리수를 두어 스타 배우, 스타 작가를 캐스팅한 외주제작사,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출연료를 올린 연기자, 그 틈바구니에서 함부로 제작규모를 키우거나 방만하게 운영한 연출자 모두 공동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한류의 전성기가 지나갔다는 위기의 외침이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방송시장에서 드라마가 만들 수 있는 매출액의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요즘, 다시 한번 지혜를 모아 우리 드라마를 정상화시켜야 합니다. 그 출발점은 제작 주체가 우리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거품을 꺼뜨려야 합니다. 다 같이 먹고살아야 합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비슷한 위기가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제 드라마는 돈 먹는 고래로 인식되어, 각 채널이 드라마의 편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배우, 스태프, 연출자 등 모든 인건비와 제작비가 올라갔습니다. 그 상승분을 해외에서 충당해 온 것이 한국의 드라마 제작시스템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드라마 제작제원이 충당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신호이지만, 그 부분에 신경을 쓴 사람은 없었습니다.

해외 자본이 쓸고 지나간 다음, 고비용 구조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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